[파이낸셜뉴스] 카카오게임즈가 전환사채(CB)를 발행하며 투자자에 전적으로 불리한 발행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5000억원에 달하는 CB 물량이 시장에서 모두 소화됐다. 5년 동안 해당 CB를 보유해도 이자율 '제로'라는 악조건을 내걸었지만 기관투자자들이 해당 CB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다. 카카오게임즈의 향후 주가 상승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3월 31일 사모 방식으로 CB 50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만기는 2026년 3월 31일로 5년물이다.
회사 측은 "CB 발행으로 조달된 자금은 개발사 인수 등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과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카오게임즈 CB의 표면이율은 0%, 만기보장수익률은 0% 이다. 표면이율은 1년간 발행기업이 지급하는 이자를 액면으로 나눈 것이다. 즉 표면이율이 0%라는 것은 투자자들이 1년간 채권을 보유함으로써 얻는 이자율이 제로(0)라는 얘기다. 또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약속한 수익률(만기보장수익률)도 '0%'이다. 즉 5년간 카카오게임즈 CB를 보유하더라도 이자율 역시 제로(0)인 셈이다.
그럼에도 KB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KB자산운용, NH헤지자산운용 등 국내 주요 운용사들은 카카오게임즈의 CB를 사들여 펀드에 대거 담았다.
또 KB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의 대형 증권사는 물론 대구은행, 캐피털사 등도 해당 CB를 인수했다.
이 중 250억원 규모의 CB는 유동화됐다. 신한은행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 카카오게임즈 CB를 기초자산으로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한 것이다.
카카오로선 이자조달 비용 안 들이고 5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성공한 셈이다.
여기에 회사는 매도청구권(콜옵션)도 50%를 보장받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회사가 콜 옵션을 행사할 때 원금에 1% 이자만 더해 투자자들의 CB를 다시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제로' 이자율도 모자라 중간에 CB 투자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악조건인 셈이다. 콜옵션은 CB 발행일로부터 1년 후인 내년 3월 31일부터 행사 가능하다.
투자자가 중도에 원금을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일종의 투자자 보호 권리인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은 사채 발행일로부터 3년이 되는 2024년 3월 31일부터 가능하다.
투자자에게 불리한 조건임이 명확한데도 기관들은 카카오게임즈의 주가 방향성에 베팅하며 해당 CB를 적극 사들였다. 해당 CB의 주식 전환가격은 5만2100원이다. 카카오게임즈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청구기간은 내년 3월 31일부터 시작된다.
증권업계는 카카오게임즈에 대해 신작 라인업을 통한 실적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카카오게임즈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2021년 1123억원, 2022년 1796억원, 2023년 2068억원 수준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북미와 유럽, 한국에서의 엘리온 서비스 실적 전망치를 상향조정했다"면서 이에 목표주가를 종전 5만1000원에서 7만원으로 올려잡았다. 엘리온은 크래프톤이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PC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다만 일부 증권사는 이달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실적 대비 고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김창권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카카오게임즈는 상장 직후 IPO 효과로 주가가 급등해 5만원 전후에서 횡보하고 있다"면서 "엘리온 흥행 성적이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주가 상승 동력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표주가를 기존 4만2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상향조정했지만 현재 주가(5만2000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김 연구원은 "(카카오게임즈의 주가는) 2021년 기준 40배에 육박하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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