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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비트코인 열풍, 이해하려 들지 마라

[이구순의 느린 걸음] 비트코인 열풍, 이해하려 들지 마라
"지금의 비트코인 가격은 이상급등 아닌가 싶다. 비트코인 가격이 왜 이렇게 높은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국회에서 비트코인 열풍에 대해 내놓은 의견이다.

7년쯤 전 성장산업으로 주목받으면서도 금융규제에 눌려 기를 못 펴던 핀테크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을 취재할 때였다. 열가지쯤 되는 질문을 추려 금융당국 고위 공무원을 만났다. 질문을 풀어놓으려는데 "핀테크? 그게 왜 필요해요? 이미 훌륭한 금융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데 핀테크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공무원은 한마디로 모든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취재를 강제종료(?) 당하고는 억울한 마음에 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공무원의 발언을 일러주면서. 핀테크 기업 대표는 "왜 필요하냐고요? 이해를 못하겠다고요? 소비자와 시장이 있기 때문이지요. 정부가 시장을 이해하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시장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데 정책 당국자가 이해할 수 없다고 시장을 부정하면 결국 정책은 실패해요. 서둘러 시장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 시장이 건전하게 작동하도록 지원해줘야 그나마 산업이 살 수 있어요"라고 명쾌한 답을 줬던 기억이 난다.

핀테크 필요없다던 공무원을 만난 뒤 2년쯤 지나 금융위원회는 선진국에 뒤진 국내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며 핀테크 육성정책을 주요업무계획 1번에 넣었다. 당시 핀테크 스타트업은 지금은 이름 대면 누구나 아는 성공한 핀테크 기업이 됐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14일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상장한다. 시중에서 평가하는 기업가치가 100조원을 넘는다. 전통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는 고액자산가 고객을 위해 비트코인 투자상품을 내놓고 시장 경쟁을 시작했다. 이 두 회사는 "비트코인을 찾는 고객들의 요구가 있다"고 비트코인 투자상품을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주식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이미 가상자산 시장이 형성돼 작동을 시작했고, 대형 금융회사들이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핀테크의 경험을 빗대 보면 이제 정책당국이 가상자산을 이해하려 들기엔 늦었다. 지금은 가상자산 시장을 받아들이고, 소비자와 투자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책을 정비해 주는 것이 정책당국이 할 일 아닌가 싶다.

사실 가상자산을 금지한 지난 3년의 정책으로 국내에서는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이 고사했다. 블록체인·가상자산을 적용한 금융서비스나 보안기술을 갖춘 기업을 찾기가 어렵다. 남은 것은 주식투자에서 눈을 돌린 개인투자자들의 투자뿐이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지난 3년간 무작정 가상자산을 금지하지 않고 개발자를 키우고 개발자들이 취직할 블록체인 사업을 키웠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제라도 안 늦었다. 더 이상 정책 당국자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장을 봤으면 한다. 시장에서 생기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피해를 막을 정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으면 한다.

내년이나 그다음 해쯤 신년 정부 업무계획에서 '선진국에 뒤진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 활성화'라는 때늦은 정책계획을 보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