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바이든 "106년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해는 '집단학살'"…미 대통령 최초

[파이낸셜뉴스]
바이든 "106년전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해는 '집단학살'"…미 대통령 최초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아르메니아 대학살' 106주년이 되는 24일(현지시간) 파리의 아르메니아 추모탑에서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역대 미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당시 잔혹행위를 '학살'로 규정했다. AP뉴시스

미국 대통령 최초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1915년 시작된 오스만 투르크 제국 당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해를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가뜩이나 껄끄러운 터키와 관계가 더 엉키게 됐지만 국제 인권을 추선한다는 외교 정책 노선을 더 다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4일(이하 현지시간) 학살 개시 106주년을 맞는 이날 이같이 규정했다.

바이든은 "매년 이날 우리는 오스만 시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같은 잔혹행위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만들고자 하는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를 미국내 인종차별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는 "편견과 불관용이라는 매일매일의 악이 되풀이되는 한 인권이 존중받고, 모든 이들이 성실하고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세계는 지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미래의 잔혹행위가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막겠다는 우리의 공통된 다짐을 새롭게 하자"면서 "전세계 모든 이들의 치유와 화해를 추구하자"고 촉구했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학살'로 규정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 지역 핵심 동맹인 터키와 긴장을 우려해 이전 미 대통령들은 '학살'이라는 단어를 피해왔다.

미 행정부는 지난주 초 동맹국들에 이같은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알렸고 터키는 강하게 반발했다.

메블루트 카부소글루 터키 외교장관은 "미국이 관계 악화를 원한다면 결정은 그들의 몫이다"라고 선언했다.

카부소글루 장관은 또 24일에는 터키가 바이든 대통령의 '학살' 규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이로부터도 우리 역사에 관해 지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기회주의는 평화와 정의의 최대 배신자"라면서 "우리는 오직 포퓰리즘에만 기초한 이 서술을 온전히 배격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선언 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차 대전의 어려운 환경 하에서 목숨을 잃은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파레틴 알툰 터키 대통령 대변인도 바이든 대통령의 학살 표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국내 정치 산술의 시각과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터키와 미국간 관계에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터키는 1915년부터 시작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외국 정부가 '학살'로 부를 때에는 자주 불만을 나타내왔다. 터키는 줄곧 당시는 전시였고, 양측 모두에서 사상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가 반발하는 가운데 아르메니아는 환영하고 나섰다.

니콜 파쉬난 아르메니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다시 한 번 인권과 범세계적인 가치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환영했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1915년 4월 23일 밤부터 24일 새벽 사이 오스만제국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됐다.

당시 아르메니아 지식인과 지역 지도자 약 250명이 체포됐고, 이들 대부분이 추방당하거나 암살됐다.

1915년 1월 아르메니아의 배신으로 사리카미시 전투에서 대패했다고 판단한 오스만제국은 이때부터 1918년까지 3년간 아르메니아인을 대규모로 살해했다. 살해 규모는 정확하지 않다.

적게는 터키가 주장하는 30만명부터 많게는 200만명까지로 추산된다.

오스만 제국은 스스로 1915~1918년 사이 80만명을 살해했다고 밝히고 있다.

추산이 제각각이지만 당시 살해된 아르메니아인 수가 60만~150만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살해 또는 강제 추방 등으로 인해 1914년 200만명에 이르던 터키내 아르메니아인 수는 1922년 40만명 미만으로 줄었다.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당시 사진 자료들은 대규모 인종청소가 있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스만 제국 병사들이 참수된 머리를 든 모습, 해골 사이에 군인들이 서 있는 모습 등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희생자들은 또 한데 모여 화형을 당하거나 갈증, 고문, 가스, 독극물, 질병, 기아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또 아이들을 배에 태워 바다에 나가 배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성폭행도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고됐다.

한편 아르메니아는 4월 24일을 '붉은 일요일'로 정해 매년 이날 전세계 아르메니아인들이 당시 학살당한 이들을 추모한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