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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중국으로 기울면 통일은 멀어진다

미중 패권다툼 격화 중에
한미 가치 동맹 흔들리면
북핵 표류·분단 고착 우려

[구본영 칼럼] 중국으로 기울면 통일은 멀어진다
미·중 사이에서 문재인정부의 줄타기 외교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 미국 조 바이든 신행정부가 대중 견제용 안보협의체인 쿼드와 반도체 공급망에 동참하라고 손짓하면서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참여를 꺼린 정부였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포장한 원미근중(遠美近中) 노선이 마침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주 3일 주목할 만한 동향을 접했다. 전경련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더 중요한 국가'로 국민 77.7%가 미국을 꼽은 반면 중국은 12.7%에 그쳤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5.9%(중국 16.0%)였다는 건 예상대로라고 치자. 무엇보다 '경제를 위해 미국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70.7%(중국 19.0%)로 나왔다는 게 흥미롭다.

여기엔 현 정부 들어 계속 벌어진 한·미 동맹의 틈을 걱정하는 민심이 반영돼 있을 법하다. 심지어 경제에 관한 한 중국에 기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도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았다. 대중 무역의존도가 워낙 높은 처지인데도 말이다.

미·중 경쟁은 이제 안보 차원을 넘어 5G 통신, 반도체 그리고 백신 등을 고리로 한 기술영역으로 번질 참이다. 안보와 경제가 맞물린 패권 다툼의 소용돌이에 속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논리는 설 땅이 없어진다. 여론조사 결과도 '바람보다 먼저 눕는' 민초들의 집단지성이 이를 알아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최근 행보는 더 중국 쪽으로 기운 인상이다. 바이든 정부가 쿼드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라는 애드벌룬을 띄웠으나 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거꾸로 문 대통령은 미국이 쿼드 참여국에 코로나19 백신 우선지원 의향을 밝히자 백신 수출통제 등을 거론하며 우회 비판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협력 강화' 깃발을 내건 보아오포럼 화상회의에도 미 동맹국 정상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

이는 현 정부가 공회전 중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여전히 집착하면서 중국의 협력을 바란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도보다리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판문점 선언에 대해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평화의 이정표"라고 했다. 하지만 추억이 아닌 현실의 4·27 합의문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카운터파트인 북이 남북연락사무소를 부수고,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어디 북한 아닌 한국 편에 섰던가. 김일성·김정일 선대 세습정권도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권고를 외면했다. 미국과 갈등을 피했던 덩과 달리 패권다툼에 돌입한 시진핑 주석이 아닌가. 이런 중국 5세대 지도부가 북의 핵무장을 말리기 위해 채찍을 들 것이란 기대는 한낱 '소망적 사고'일 뿐일 듯싶다.

중국은 북핵 제재 국면에서 수시로 북에 뒷문을 열어줬다. 대제국 당(唐)이 한반도 3국(고구려·백제·신라)을 '분할통치'해 통일을 방해했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마당에 한·미 공조마저 허물어진다면? 김정은 정권이 핵보유국 지위로 세습체제를 지키면서 북한 중심의 연방제 통일을 꿈꾸는 미망을 떨쳐낼 리 만무하다.


그렇게 되면 분단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보여주기식 한반도 평화 쇼에 올인해 중국에 경사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자유·민주·인권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이란 베이스캠프에서 통일 등정도 가능함을 잊어선 곤란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