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표지 / 사진=뉴스1
전두환 회고록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김일성 회고록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지난 2017년 전두환 회고록 판매금지 결정이 재차 도마에 오르고 있다. 김일성 회고록 판매는 허용한 반면 전두환 회고록은 판매를 막은 것이다. 두 회고록을 두고 다른 판결이 나온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박병태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사건 신청은 이유가 없다”며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이 소송은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연대(NPK)’ 등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김일성 회고록 출간이 인간의 존엄성·인격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를 들었다.
판결 기준은 회고록 판매가 헌법상 신청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서적 내용이 채권자들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 신청인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신청할 수는 없다”고 했다.
4년 전에는 전두환 회고록이 문제가 됐었다. 2017년 6월 고 조비오 신부 유족 측은 <전두환 회고록>이 역사를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광주지법에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 “헬기 사격이 없었다” 등의 주장을 내놨다.
당시 재판부는 조 신부 측 청구를 인용하며 “이 책은 5·18의 성격을 왜곡하고 채권자들을 포함한 5·18 관련 집단이나 참가자들 전체를 비하하고 편견을 조장해 채권자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 및 평가를 저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허위 기재된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서는 이 도서를 발행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해당 서적 판매 시 신청인의 인격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두환은 같은 해 10월 지적받은 대목들을 삭제한 수정본을 재출간했다.
이 같은 판결은 2005년 대법원 판례를 준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출판물의 발행·판매 등 금지는 표현에 대한 사전억제에 해당해 원칙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표현 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사전금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일성 회고록 관련 소송의 여파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률대리인인 도태우 변호사는 지난 14일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판례를 인용한 항고 이유서를 법원에 냈다. 여기에는 “신청인 중 한 명은 6·25 전쟁납북자의 직계후손. 납북자 직계자녀 및 후손들의 명예와 인간존엄성을 포함한 인격권을 짓밟는 행위”라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단체 민생민주국민전선은 지난 18일 김일성 회고록 가처분 소송을 기각한 합의부 판사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방조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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