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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온라인에 직접 유포한 증거가 없어도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남성이 유포자라는 분명한 증거가 없더라도 영상 관리를 소홀히 해 결과적으로 유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민사6단독 박형순 판사는 여성 A씨가 전 남자친구 이모씨(31)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3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교제하던 이씨로부터 성관계 영상을 찍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러 차례 거부 의사를 밝히던 A씨는 촬영 후 즉시 삭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촬영에 동의했다. A씨는 영상 삭제 여부를 확인하고, 이후 이씨와 결별할 때도 정말 삭제된 게 맞는지 다시 물어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씨는 휴대전화 화면을 슬쩍 보여주며 “영상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A씨는 4년 뒤인 2018년 이씨와의 성관계 영상이 온라인상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을 알게 됐다. 경찰 수사 결과 이씨가 휴대전화와 구글 드라이브를 연동해 촬영물이 자동 저장되는 방식으로 A씨 영상을 보관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전해졌다. 경찰은 이씨가 영상 유포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는 등 수사를 벌였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처음 영상이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가 폐지돼 최초 유포자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도 이씨의 유포 혐의를 찾지 못하고 2019년 12월 31일 무혐의 처분했다.
A씨는 결국 이씨를 상대로 영상을 부주의하게 관리한 책임과 초상권 침해 피해 등을 묻기 위해 지난해 6월 북부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휴대전화가 해킹돼 영상이 유포된 것이라며 본인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유출 경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피고가 동영상이 유출될 수 있는 결정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며 “단순 부주의로 보기 어렵고 원고의 인격권과 사생활도 침해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아닌 다른 여성 3명과의 성관계 영상을 불법 촬영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이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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