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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 ‘법꾸라지 작전’ 법원이 가려주길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 ‘법꾸라지 작전’ 법원이 가려주길
오는 25일 서울중앙지법이 21세기 산업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중요한 판단을 내린다.

세계 최대 인터넷 동영상 회사인 넷플릭스가 한국의 인터넷 망을 공짜로 쓰겠다며 국내 통신회사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냈는데, 그 1심 판결이 나오는 날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 간단한 문제여서 소송씩이나 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일반인들도 한달 3만원씩 꼬박꼬박 인터넷 사용료를 내고, 네이버·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트래픽 발생하는 만큼 사용료 다 낸다.

그런데 유독 수백만 한국인에게 영화,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넷플릭스가 공짜 인터넷을 쓰겠다고 하니 얼핏 듣기에도 말 안되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고 면박 한마디 주고 끝낼 일 아닌가 싶을 정도다.

기업들 간의 인터넷 망 사용료는 당사자들이 계약으로 알아서 협의하고 계약하는 간단한 문제였다. 적어도 넷플릭스가 한국의 인터넷 망은 공짜라고 주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넷플릭스가 국내 통신회사와 인터넷 사용료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부가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으니 정부가 나선 것이다. 그런데 돌연 넷플릭스가 중재를 거부하고 소송을 냈다.

사실 넷플릭스의 소송 제기 소식에 전문가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미국에서도 통신회사에 인터넷 사용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왜 한국에서는 안 낸대? 다른 회사들 다 인터넷 사용료 내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왜 공짜로 쓰겠대? 한국 정부가 중재하겠다는데 갑자기 웬 소송이래?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넷플릭스의 작전이 하나씩 드러났다. 넷플릭스는 최근 법원 변론에서 "한국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해 콘텐츠를 전송만 하기 때문에 인터넷 망 사용료를 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접속은 돈을 내지만 연결과 전송은 인터넷 망을 무료로 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은 전송과 접속의 개념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넷플릭스는 법을 자기 이익에 맞춰 편한 대로 해석해 한국의 인터넷 망을 공짜로 쓰겠다는 말이다.

'법꾸라지'라는 말이 있다. 법률의 전체 원칙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에 맞게 법을 해석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넷플릭스가 우리 전기통신사업법의 공평한 사업원칙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 따라 해석하는 '법꾸라지 작전'을 쓴 것 아닌가 싶다. 당사자 간 계약도 필요없고, 정부 중재도 싫고, 한국에서는 공짜로 인터넷 망을 쓸 자신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오는 25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의미가 남다르다.

남들 다 돈내고 쓰는 상품을 법 좀 잘 안다고 공짜로 쓰겠다는 불공정한 배짱을 법원이 현명하게 가려내 줬으면 한다. 비대면 시대 국가 경쟁력을 가늠할 세계 최고의 한국 통신 인프라는 공짜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언해 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