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감리자 없고, 정류장 이전 없는 등 곳곳에서 안전 불감증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내 건축물 철거공사중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에 매몰됐던 45인승 시내버스가 사상자 수색작업이 모두 끝난 후 10일 오전 0시 30분께 대형 트레일러로 인양되고 있다.사진=뉴스1 제공
【파이낸셜뉴스 광주=황태종 기자】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0일 이용섭 광주광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시장)이 밝힌 이번 사고는 '9일 오후 4시 22분께 광주시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내 건축물 철거공사중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공사장 앞 버스정류장에 있던 시내버스를 덮쳐' 일어났다. 1차 건물 붕괴 후 2차 시내버스 매몰 사고가 순식간에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버스 앞쪽에 있던 승객과 버스운전자 등 8명은 중상을 입은 채 구조됐고, 버스 뒷편에 있던 9명은 모두 숨졌다. 대중교통 수단 중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날벼락'을 맞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광주시,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현재 1차 건물 붕괴와 관련해 사고 당시 현장 감리자가 없었던 것이 사고 원인으로 지적된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는 이날 오전 9시 40분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정몽규 회장의 사과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감리자의 현장 부재 논란과 관련해 "감리업체는 (시행사인)재개발조합이 선정하게 돼 있고, 상주 여부는 철거계획서에 따라 제대로 공사가 될 것이냐, 아니냐 판단은 초반에 이뤄지기 때문에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다"며 "사고가 났을 때는 감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용섭 재난안전대책본부장(시장)과 임택 사고수습대책본부장(동구청장)도 이어진 브리핑과 기자 질의응답을 통해 '현장 감리 부재'를 거듭 확인했다.
감리자는 사업자와 시행자 사이의 중립적 위치에서 해당 공사가 설계도대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시공 관리, 공정 관리, 안전과 환경관리 등에 대한 기술지도를 하는 현장 관리감독자다. 부실공사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인력이지만, 이번 사고 당시 현장에 없었다.
철거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거 중인 건물이 통째로 앞으로 넘어져내린 것은 철거업체가 당국에서 허가한 해체계획서와 달리 철거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건물은 사고 하루 전인 8일 저층 일부를 철거하고 바로 옆에 폐자재와 토사 등으로 건물 3층 높이와 맞먹는 토산을 쌓았고, 그 위에 굴착기를 올려 9일 본격적인 철거를 시작했다. 저층 구조가 철거로 약해진 상황에서 5층 공간을 허물다 건물이 급격히 한쪽으로 쏠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철거업체가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건물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차 버스 매몰 사고와 관련해서는 사고가 발생한 시내버스 정류장을 사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류장을 옮겼으면 시내버스가 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쳐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가 버스를 덮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용섭 재난안전대책본부장(시장)과 임택 사고수습대책본부장(동구청장)은 이날 광주시청에서 열린 브리핑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버스정류장을 임시로 옮기는 사전 안전대책 협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 등은 "정류장을 임시로 옮기는 안전대책은 시공사에서 저희에게 협조 요청을 하게 돼 있다"면서 "그런데 그런 과정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마 회사 측에서는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까지 저희에게 협조 요청을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고 당시 상황이 녹화된 차량 블랙박스와 상점 CCTV 영상을 보면 사고를 당한 시내버스를 뒤따라오던 한 회사 통근버스는 사고 직전 해당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시내버스를 그냥 지나쳐 가면서 화를 면했다.
이용섭 재난안전대책본부장(시장)은 "광주시는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과 함께 철저하게 사고원인을 조사해 엄정하게 조치하고 책임도 물을 것"이라며 "건설업체들의 안전불감증과 하청·감리 관련 문제가 시정되도록 정부와 국회에 제도개선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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