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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장 점쳐도 '비상경제' 계속…TF·회의 천국 기재부


4% 성장 점쳐도 '비상경제' 계속…TF·회의 천국 기재부
기재부 기획재정부 전경
[파이낸셜뉴스]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우후죽순 난립한 태스크포스(TF) 홍수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가 위기상황에 놓이자 기재부는 총대를 메고 '비상 경제체제'에 돌입했다. 사안이 급박하고 시기가 중요한 만큼 여러 새로운 회의들이 꼬리를 물고 생겼다. 부동산 등 새로운 문제가 크게 불거질 때마다 주요 대책을 발표하는 회의들도 신설됐다. 그러나 최근 내부에서는 백신 보급과 여러 반등 지표 등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 기미가 보이고 있음에도 기존 회의들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채 유지되고 있다. 한번 만들어진 제도를 없애는 게 어려운 공무원사회 특성이 드러난 셈이다.

코로나 이후 더…'회의의 늪' 빠진 기재부

2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열린 제3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4월 29일 1차 회의를 시작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나 매 회 비상경제와 관련된 안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겸' 다른 회의들이 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37차때는 제3차 혁신성장 전략회의가 붙으면서 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가능하게 한다는 '한걸음 모델' 과제 선정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비상 경제와는 큰 관련성이 없는 주제다.

지난 11일 이억원 제1차관 주재로 열린 '제21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 겸 한국판뉴딜 점검회의 겸 제15차 물가관계차관회의'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두 글자만 붙인 점검회의 뒤에 줄줄이 비슷한 회의들이 붙어 안건을 쏟아 냈다. 이렇게나 긴 이름을 가진 회의는 올해에만 5번이나 열렸다.

기재부가 지나치게 많은 회의와 TF의 늪에 빠졌다는 비판은 홍남기 부총리의 취임 이후 꾸준히 받아온 지적이다. 지난해에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은 기재부 산하 TF가 12개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생긴 TF는 한국판뉴딜 점검 TF, 조세-고용보험 소득정보 연계 추진 TF 등이 더 생겨났다. 확대간부회의, 코로나정책점검회의, 디지털뉴딜 자문단 회의, 재정관리점검회의 등 회의가 몇 개나 있는지는 기재부 관계자도 셀 수 없을 정도다.

12년째 유지하는 상황실도…"업무 과중되지만 일할 유인 없어"

이렇게 한 번 만들어진 TF와 회의는 쉽게 없앨 수도 없다. 업무는 과중되지만 누가 없애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재부 5층엔 '기획재정부 비상경제상황실' 현판이 걸려있다. 이 상황실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처음 꾸려졌다.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북한 관련 상황들이 발생하면 작동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관련 지표를 취합하는 등 통상적인 기재부 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옆에 걸려 있는 '경제상황점검반' 역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뚜렷한 역할은 찾기 힘들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성장률 4% 이상을 점치고 있고, 최근 수출이나 소비 수치가 아무리 좋게 나와도 기재부가 자의적으로 비경중대본을 없앨 수는 없지 않냐"며 "결국 우리 직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TF와 회의들로 인해 직원들 업무는 계속 가중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주52시간 근무제 본격화와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 공무원 특별공급 논란 등 공무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유인마저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재부 한 사무관은 "최근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은 날을 기억하기 힘들다"며 "사명감도 있긴 하지만 매일 생각하면서 일할 순 없다. 그냥 일하는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고위 공무원들에게도 고민거리다.
결국 직원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재부처럼 외부 없이 직원이 야근으로 일 처리 하는 곳도 없다"며 "공무원은 근로자가 아니라 주52시간제에도 해당되지 않고 관평원 사태로 특공 폐지까지 겹쳤는데 업무 강도는 높아만 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직원들에게 줄 인센티브는 없어지는데 계속 열심히 일하라고 할 수만은 없어 고민"이라며 "일할 수 있는 유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