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대법 "음란물 제작해 소지한 범죄.. 제작·배포죄만 적용 가능"

징역 7년 선고한 원심 파기..."新 소지 안 살폈다"
"제작자, 음란물 소지한 경우 '제작·배포죄에 흡수"

대법 "음란물 제작해 소지한 범죄.. 제작·배포죄만 적용 가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음란물 제작자가 자신이 제작한 음란물을 소지하고 있을 경우 ‘음란물 제작·배포죄에 더불어 '소지죄’까지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제작한 음란물을 소지하는 건 수반행위여서 별도의 영상을 새로 소지하는 게 아닌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등)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등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여성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어플을 이용해 또래 남자인 것처럼 속여 성과 관련된 대화를 나눈 뒤 신체 사진이나 음란 동영상을 전송받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피해자들로부터 총 276개의 음란물 파일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범행 과정에서 협박으로 피해자들을 추행함과 동시에 성적 학대행위까지 했다고 봤다. 또 협박을 통해 음란동영상 162개를 제작했다고 보고 ‘음란물 제작·배포죄’을 적용했고, A씨가 이 영상들을 소지하고 있었던 점도 ‘음란물 소지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음란물을 제작해 보관하고 있던 것이 실체적 경합관계라고 판단한 것이다.

1심은 A씨의 음란물 제작·배포와 소지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5년간 신상정보 공개고지도 명령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다.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A씨는 “음란물 제작 행위는 필연적으로 음란물 소지 행위를 수반한다”며 “따라서 불가벌적 사후행위로 별개의 죄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가 자신을 촬영한 뒤 영상 파일을 저장함으로써 범행이 완성됐다”며 “A씨가 전송받은 행위는 영상제작과 별개 행위에 해당하고, 해킹 등 이유로 영상이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음란물 제작·배포 혐의와 소지 혐의를 구분해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경우 음란물 제작·배포죄로만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음란물을 제작한 사람이 해당 음란물을 소지하게 되는 경우 음란물 제작·배포죄에 흡수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제작에 수반된 소지행위를 벗어나 새로운 소지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의 행위를 소지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A씨의 범행 중 새로운 소지가 있었는지 살피지 않은 채 음란물 소지죄와 음란물 제작·배포죄를 실체적 경합범 관계에 있다고 봤다”며 “이는 법리를 오해했고,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