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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훈민정음 NFT

'천금물전(千金勿傳)'이란 '천금을 주더라도 팔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 제일의 명필 왕희지가 평생 경험담을 적어서 자손에게 남긴 글에서 유래했다. 조선 제일의 화가 겸재 정선은 집안과 관련되거나 사적인 그림에 손수 새긴 '천금물전' 도장을 찍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보물(無價之寶)을 이른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는 1940년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의 존재가 알려지자 "아!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라고 외쳤다. 그때까지 훈민정음 반포 뒤 해례본을 찍어 펴냈다는 기록이 없어서 한글 창제를 둘러싼 갖은 이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간송 전형필은 "해례본의 가격으로 1만원(당시 기와집 10채 값)을 군말 없이 내줬고, 거기에 수고비라며 1000원을 더 얹어주었다"고 소장 경위를 직접 밝혔다. 귀한 문화유산은 귀한 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게 간송의 소신이었다. 그래서 '훈민정음 간송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해례본을 영인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간송의 최대 업적이다. 간송은 "영인본이 나와 널리 책으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적이 안심이 되었다"라고 훗날 술회했다. 국보 70호로 지정된 해례본은 '국보 중의 국보'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경영난에 빠진 간송미술관이 최근 해례본을 대체 불가능 토큰(NFT·Non Fungible Token)으로 발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진파일 1개당 1억원씩, 100개를 한정판으로 발행한다. 구매자는 100분의 1의 소유권을 갖는다. 고유번호가 붙은 NFT 파일은 복사와 전송이 안되는 또 하나의 원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디지털 자산화를 둘러싸고 제작 과정에서의 훼손, 국가지정 문화재의 상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단순 소장이나 전시보다 가치의 공유가 더 중요하다. 간송이 무가지보, 천금물전을 뛰어넘어 영인본 출간을 허락했던 정신으로 돌아가면 문제 될 게 없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