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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5명이 김홍빈 외면” 도왔던 러시아 산악인 증언 나왔다

“산에 가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다, 사람이 위험”

“최소 15명이 김홍빈 외면” 도왔던 러시아 산악인 증언 나왔다
광주시산악연맹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브로드피크(해발 8047m)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정상 도전을 앞두고 베이스캠프(5135m)에서 찍은 김홍빈 대장. / 사진=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최소 15명이 김홍빈 외면” 도왔던 러시아 산악인 증언 나왔다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가 지난 19일(현지시각) 브로드피크 정상 아래 해발 7900m 지점에서 조난당한 김홍빈 대장과 만나 사진을 찍고 있다. 라조는 김 대장이 사진을 찍은 뒤 10분 후 로프를 타고 오르다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사진=뉴스1(Vitaly Lazo 사진)
[파이낸셜뉴스] 조난됐던 김홍빈(57) 대장을 가장 먼저 구하러 나섰던 러시아 산악인 비탈리 라조(48)가 “최소 15명의 산악인들이 김 대장 상황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고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브로드피크(8047m) 정상을 정복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하산하다 실종된 김 대장 수색이 1주일째 이어지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라조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자신이 속한 데스존프리라이드(deathzonefreeride)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남기고 이 같이 밝혔다. 그는 “당신들은 SNS에서 8000m를 정복한 용감한 사람들이고 영웅일지 모른다”면서도 “당신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한심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올렸다.

라조는 지난 18일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에 걸쳐있는 브로드피크에 등정한 뒤 하산하다 조난된 김 대장 구조 요청에 가장 먼저 응했던 산악인이다. 라조가 김 대장을 봤을 때 이미 그는 14시간 넘게 벼랑에서 버틴 상황이라 매우 지쳐있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 대장은 라조와 함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안정된 상태였다.

라조가 러시아 산악 사이트 ‘risk.ru’에 올린 보고서에 따르면, 김 대장은 크레바스(빙하 틈)에 떨어진 게 아니라 러시아 여성 아나스타샤 루노바가 실족해 매달려 있는 로프를 보고 정상 루트로 착각해 벼랑 아래로 내려왔다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라조는 뒤늦게 김 대장의 상황을 인지하고 구조에 나섰다. 라조가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김 대장을 구하려 했지만 주마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김 대장은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라조는 인스타그램에 김 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10분 후 김 대장이 로프를 타고 오르다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라조는 “적어도 15명이 김 대장을 지나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조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고 상황을 무전기나 인리치(구조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통해 알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인 김 대장을 구조할 힘이 없었다면 인정하겠다”면서도 “하지만 왜 사고를 알리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따져 물었다.

라조는 “불행하게도 현대의 영웅적인 등반가들에게는 도덕성이 없다”며 “산에 가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