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부총리 자화자찬 비판
전세시장 공연히 들쑤셔
오류 인정 후퇴도 큰 용기
홍남기 경제부총리님의 말을 듣다 문득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랐습니다. 1930년대 김동인이 발표한 작품이지요. 주인공 M은 생식능력이 없는 남자입니다. 그런데 덜컥 아내가 임신했습니다. 아내가 출산한 뒤 M이 아이(아들)를 안고 의사인 '나'를 찾아옵니다. M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놈이 꼭 제 증조부를 닮았다거든"이라며 흰소리를 합니다. 이어 제 양말을 벗어 가운뎃발가락이 제일 길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러곤 강보를 들춰 아기 발가락을 보여주는데 과연 가운뎃발가락이 길쭉합니다. 희희낙락하는 M에게 '내'가 말합니다. "발가락뿐 아니라 얼굴도 닮은 데가 있네." '나'는 덕담을 했지만 끝내 M의 시선을 피하고 맙니다.
홍 부총리님은 지난주 부동산 장관회의에서 "서울 100대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 갱신율이 77.7%로 10채 중 약 8채가 갱신되는 결과를 보였다"며 "임차인 다수가 임대차 3법 시행의 혜택을 누렸다"고 말했습니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신고제를 말합니다. 이 중 앞의 둘은 작년 7월부터, 전월세신고제는 올 6월부터 시행됐습니다. 홍 부총리님은 누가 흉을 보든 말든 임대차법을 제 자식으로 거두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도 소설 속 '나'처럼 덕담을 건넬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건전한 비판이 생명인 기자는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합니다. 이미 언론은 홍 부총리님의 발언을 두고 자화자찬이 지나치다고 비판을 쏟아냈지요. 저도 그 대열에 낄 수밖에 없어 유감입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이 4억9921만원에서 6억2678만원으로 25% 넘게 올랐다고 합니다. 이 통계엔 계약갱신권(상한 5%)을 행사한 건수도 포함됐습니다. 이걸 빼면 신규 전세계약의 상승률은 껑충 더 뛰겠지요. 전세시장 안정을 겨냥해 도입한 임대차 3법이 되레 전셋값 상승을 부추긴 격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제26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100대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 갱신율이 77.7%로 10채 중 약 8채가 갱신되는 결과를 보였다"며 "임차인 다수가 임대차 3법 시행의 혜택을 누렸다"고 말했다. 여론은 즉각 자화자찬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사진=뉴시스
선의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잠언이 있습니다. 임대차 3법은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사례이지요. 훗날 사람들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정책과 함께 임대차 3법을 문재인정부의 3대 실책으로 꼽을 공산이 큽니다. 홍 부총리님이 정책을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팀장으로 책임이 없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임대차법을 두둔하려는 부총리님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경제부총리가 가난한 월급쟁이 M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잘못이 있으면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집값만으론 성이 안 차는지 이 정부는 전셋값 시장도 들쑤셨습니다. 하지만 오류 시정을 거부하는 데는 당정이 막상막하입니다.
우리 속담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채반은 피자판처럼 둥글넓적합니다. 장을 거르는 데 쓰는 용수는 우산보관통처럼 뾰족하고 긴 모양입니다.
아무리 우겨도 채반이 용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말이 안 되게 우기는 걸 좀 어려운 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하지요.
문 정부 임기가 넉넉잡아 열 달 남았습니다. 내년 3월 대선 투표일을 고려하면 여덟 달이고요. 새로 일을 하기엔 빠듯하지만 잘못을 바로잡기엔 넉넉한 시간입니다. 홍 부총리님, 전월세신고제는 놔두더라도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무를 순 없을까요?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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