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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내 도보배송' 배달기사들 "추가 임금 500원? 전 못 받아요"

'단지 내 도보배송' 배달기사들 "추가 임금 500원? 전 못 받아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잠원동 일대 A아파트 정문 앞 도보에는 오토바이 단지내 출입금지로 배송기사들이 도보배송을 위해 정차해 둔 오토바이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사진=김동규 인턴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 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잠원동 소재 A아파트 단지 정문 앞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굳게 닫힌 철문에 걸린 '오토바이 출입금지'탓에 아파트 단지 내 오토바이 주행이 금지돼서다.

이날 오후 최고기온은 39도.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 내렸지만 배달대행 서비스 기사들은 이 같은 폭염에도 예외없이 배달음식을 들고 뛰어야 했다.

도보배송 추가 품삯 500원.."못 받는 경우도"
4일 배달기사 노조 라이더유니온 등에 따르면 올해 초 일부 아파트들이 배달기사 단지 내 통행을 금지해 이른바 '갑질아파트'가 도마에 오른 이후에도 여전히 단지 내 통행을 제한하는 아파트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기준 잠원동 소재 아파트 가운데 '도보배송'을 고집하는 아파트는 3곳에 이른다.

이에 따라 배달대행서비스 배달기사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9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도보배송'을 하고 있었다.

이날 마주친 복수의 배달원들은 '도보배송'을 고집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하는 추가 품삯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내 오토바이 진입을 제한해 아파트 입구서부터 도보로 걸어서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데다 배달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걸려 추가로 품이 든다는 얘기다. 배달기사들에게 시간이 돈인 만큼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비용 지불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잠원동에서 만난 배달원 A씨는 "도보배송을 가면 추가 수익을 500원이 책정된다"며 "시간과 노력은 몇 배로 드는데, 500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요되는 시간에 비교할 때 3000~5000원 사이의 추가 수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배달기사들은 점수제를 적용받아 배송을 거부할 경우 배송의뢰가 떨어지는 경우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원 B씨는 "점수제 탓에 도보배송 아파트 배달을 거부하면 점수가 깎인다"며 "점수 하락은 곧 의뢰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가게 직고용 배달기사의 경우 추가 품삯마저 받지 못하기도 했다. 배달원 C씨는 "우리 가게는 추가 요금이 없다"며 "각자 처한 사정이 있기에 처우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도보배송이 배달하기에 불편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단지 내 도보배송' 배달기사들 "추가 임금 500원? 전 못 받아요"
폭염이 이어진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근 골목에서 배달기사들이 오토바이에 음식을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가 품삯, 자영업자에 전가.."왜 우리가"
도보배송에 따른 추가 품삯이 요구되자 비용 부담은 자영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었다.

잠원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30대 업주는 "도보배송에 따른 편익은 고객이 갖는데, 추가 비용은 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배달대행업체는 추가 노동에 상응하는 별도 수고비를 마련해야 배달기사들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 D씨도 코로나19로 업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도보배송에 따른 비용 부담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D씨는 "하나라도 더 팔아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품삯 전가를) '시장이 바뀌고 있다'라고만 합리화할 문제겠나"라고 반문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도보배송에 따른 추가 노동에 대한 품삯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는 점을 두고 "돈 몇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타인의 노동을 이용한다면, 서로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측에서 우려하는 안전상 문제가 있다면 오토바이 전용 길을 조성한다던가, 단지 내 서행운전 규칙 제정 등을 대안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월 도보배송 아파트 사례를 포함해 이른바 '갑질아파트' 103곳에 대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