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공직 끝낸 이재영 행안부 차관 이임사 잔잔한 감동
'소확행' 의미 전하며 '격려와 경청 리더십' 후배들에 귀감
이재영 행정안전부 전 차관. 행안부 제공
[파이낸셜뉴스] "제 방에 오는 분들을 웃음으로 맞이하자. 보고 과정에 목소리가 높아지더라도 보고가 끝나면 (후배에게) 격려를 잊지 말자."
이재영 행정안전부 전 차관이 30여년의 공직을 끝내고 지난 5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임사가 조용한 감동을 주고 있다. 권위없이 소통하고 늘 경청하는 모습의 공직자로서 후회와 아쉬움이 솔직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1500자의 이임사에는 코로나19로 답답한 시대 우리의 소소한 행복, 오늘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전 차관은 지난 5일 퇴임했다.
8일 행안부에 따르면, 이 전 차관은 별도의 이임식없이 조용히 은퇴했다.
이 전 차관은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이임사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32년 공직을 돌아보며 '작지만 소소한 행복, 오늘 하루'의 소중한 의미를 후배들에게 전했다.
이 전 차관은 "행복한 인생은 행복했던 기억이 많은 삶이라 하던데, 내 공직생활 32년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을까, 아니면 반대일까라고 자문해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전 차관은 후배들에게 "퇴직 무렵이면 아마도 같은 물음에 부딪힐 것"이라며 간단한 것 같지만 마음먹기가 쉽지않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메시지를 남겼다.
"나중에 승진하면 행복하겠지하는 미래 조건부 행복은 막상 승진하면 또 다른 조건이 생겨납니다. 행복은 그만큼 다시 미래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 전 차관은 "행복한 공직생활을 만들고 싶거든 내일이 아닌 오늘 하루를, 큰 것 한방이 아닌 소소한 일상들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만들길 바란다"고 썼다.
이 전 차관은 "32년 공직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알았더라면" 하며 후회도 했다. "단기 임기제 공무원인 차관이라는 자리가 끝자락이 언제쯤인지를 알고 시작했는데, 막상 그 종점에 이르고 보니 좀 더 잘할 수 없었을까"하는 아쉬움도 컸다.
그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32년)이었다.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알았더라면 하나라도 더 의미 있는 일을 해 볼걸, 좀 더 열심히 할 걸, 직원들에게 더 싹싹하게 대할 걸하는 후회가 스쳐 지나간다"고 아쉬워했다.
또 이 전 차관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지 않고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인데 그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순전히 제 소양 부족이었다"며 솔직한 후회도 했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고도 했다.
이 전 차관은 지난해 8월 행안부 차관에 임명될 때 거창한 각오 대신에 자신과의 두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제 방에 오는 분들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보고 과정에 목소리가 높아지더라도 끝나면 격려를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 다짐을 온전히 지키지 못해 후회된다"고 이 전 차관은 썼다.
그러면서 이 전 차관은 "여러분을 만난 것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도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혼자서 오를 수 없는 수많은 고갯길을 넘을 수 있었다"며 "부족한 저와 기꺼이 동행해 주어 너무나 고마웠다"고 했다.
이 전 차관의 소탈한 성품, 경청과 칭찬의 리더십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후배 공무원들도 이 차관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행안부 익명게시판에는 "(이 차관의) 이임사를 두번째 정독 중이다. 감동이다" "이임사를 내려받아 저장해둔 건 처음"이라는 글로 그의 퇴임을 아쉬워했다.
또 "행안부의 많은 상관 중의 상관이었다. 보스가 아닌 리더로서 직원들을 대했다. 직장 상사가 아닌 인생의 존경하는 선배"라며 이 전 차관의 인생 2막을 응원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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