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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직장 등서 끊이지않은 '가스라이팅 범죄'

친인척 학대·직장 괴롭힘 등 다양
처벌·심리상담 강화 등 대책 필요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하는 '가스라이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초 사회적 이목을 끌었던 '데이트 폭력'뿐만 아니라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친인척 간 학대 등 새로운 유형이 발생하고 있다.

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첫 번째 재판이 열린 '마포 오피스텔 살인 사건'은 가스라이팅 범죄의 다면성과 심화성을 나타냈다. '34㎏ 시신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20대 청년 김모씨(20)와 안모씨(20)가 고교 동창 A씨(20)를 두 달 가량 서울 마포구 소재 한 오피스텔에 감금하고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A씨는 사망 당시 34㎏의 심각한 저체중 상태로 케이블 타이에 묶여 있었다.

해당 사건은 성인 남성이 동년배 친구들로부터 감금생활과 임금착취,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점에서 가스라이팅 의혹을 받았다.

이외에도 가스라이팅 범죄 유형은 더욱 다각화되고 있다. 무속신앙에 빠져 지인의 사주를 받고 60대 친모를 때려 숨지게 한 '안양 세 자매'는 징역 7년을 받았고, 살해를 지시한 지인 B씨에겐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B씨가 경제적 도움을 많이 주는 등 세 자매와 단순한 인간관계 이상으로 B씨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배적 관계'를 인정했다.

30대 남성이 또래 부부의 협박에 7년 동안이나 감금과 폭행을 당하며 노예 생활을 했던 '친구부부 노예사건' 역시 가스라이팅 범죄 의심을 받았다. 이 남성은 또래 부부에 의해 소변과 벌레를 강제로 먹는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금전적 갈취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미성년자 성착취 문제로 사회적 충격을 안긴 'n번방 사건' 등 디지털범죄와 데이트 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에도 가스라이팅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에 대한 처벌 규정과 예방대책은 미비한 상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스라이팅 범죄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기 어렵다"면서 "가스라이팅 유형도 직장, 가정, 사회에서 다양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에 대해 심리상담 등 가벼운 해법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며 "각종 범죄에 가스라이팅이 발생했다면 그에 따른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 직장, 가정의 수직적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