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금융수장들이 가장 피하고 싶고, 입 밖에 내기 싫어하는 것이 인플레이션 대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처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경우 가장 쉬운 대처방법은 금리조정과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이다. 하지만 예고 없이 단숨에 금융정책을 바꿀 경우 서민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금융정책 변화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탓인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알쏭달쏭한 인플레이션 대처 화법은 더욱 극심해졌다. 심지어 조 바이든 대통령조차도 애매한 화법을 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성명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서 (연준이) 조치해야 한다"면서도 "연준을 압박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심리적 부담감을 줬지만, 압박하지 않겠다고 말을 주워 담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은 아리송한 화법을 더 자주 쓴다. 똑 부러지거나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인플레이션 대책을 내놓은 경우는 드물다. 앞서 파월 의장은 지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테이퍼링 문제를 논의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냥 논의했다고 하면 될 것을 중의적인 표현을 했다.
지난 8월 잭슨홀미팅 연설에서도 파월의 성명은 소극적이었다. 파월은 연내 테이퍼링 도입을 시사했지만, 마치 본인의 의견이 아닌 것처럼 다른 연준 위원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표현만 에둘러 썼다.
파월은 그동안 테이퍼링의 연내 도입을 두고서 무려 6개월 가까이 언급을 미뤘다. 애매모호한 파월의 발언에 대한 해석도 천차만별이었다. 이처럼 신중한 인플레이션 대책 발표는 자신감 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자신의 발언에 따른 금융충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인플레이션 화법도 조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지난달에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 시기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지만 지체해서도 안되겠다는 게 기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추가 금리인상을 곧 하겠다는 건지 아닌지가 애매하다.
그렇지만 한국은행의 정책 실행은 뜸들이는 연준보다는 좀 더 명쾌하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시아 주요국 중 최초로 지난달 말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연준의 금리인상 이전에 한국은행이 선제적 대응을 재빨리 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연준이 강 상류에 있는 거대한 댐이라고 한다면 하류에 있는 한국은행은 수문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알쏭달쏭한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를 두고서 그릇된 해석과 성급한 대처는 경계해야 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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