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로
조선인 징용 노동자 등 한국인 사망
사망자, 수천명~1만명 추정
지난해 8월 5일 일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현지 관계자들이 한국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비 앞에 태극기를 설치하고 있다. 히로시마에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AP뉴시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지난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스러진 한국인 희생자들을 추도하기 위한 위령비가 다음달 초에 건립된다.
20일 주후쿠오카 총영사관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오는 11월 6일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거행된다고 밝혔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 폭탄이 투하돼 약 7만400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1만명은 조선인 징용 노동자 등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다른 원폭투하 지역인 히로시마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건립돼, 히로시마 원폭 투하 하루 전인 8월 5일에는 매년 희생자 추모 위령제가 열린다.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어, 위령비 건립이 재일동포 사회의 오랜 염원이었다.
나가사키 위령비 건립은 1990년부터 추진은 됐으나, 재일동포 사회의 견해차, 부지확보 어려움 등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가 2011~2012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후쿠오카 총영사관이 나가사키시에 장소 제공을 요청하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이에 2013년 민단 나가사키 본부와 후쿠오카총영사관, 한국후쿠오카청년회의소 등으로 구성된 건립위원회가 발족했다.
하지만 나가사키시 측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배경인 강제 징용이란 표현을 비문에 넣는 문제, 위령비 디자인 등을 이유로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현지 일본 우익 단체가 한국인 위령비 건립을 저지하기 위한 인터넷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위령비 건립위를 중심으로 끈질기게 시 당국과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전개했고, 올해 3월 부지 제공 승인이 났다. 지난달에는 비문 문구 등에 대한 세부 협의도 끝났다. 비문 내용은 시 당국이 반대한 '강제 징용'이라는 표현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넣는 것으로 절충했다.
위령비 안내문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자, 군인 및 군무원으로 징용, 동원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나가사키시와 주변 지역에 (조선인) 약 3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약 7만4000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수천명에서 1만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동포도 목숨을 잃었다"고 기술됐다.
위령비 안내문은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기술돼 있는데 영문에는 '강제로 노역했다'(forced to work)는 표현이 들어갔다.
후쿠오카총영사관 측은 "재일동포와 한국 정부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번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건립을 통해 태평양전쟁 당시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 영령을 재일동포뿐 아니라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자유롭게 추도할 수 있게 됐다"며 "전쟁과 피폭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징표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건립위는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와 이희섭 후쿠오카총영사, 여건이 민단 단장 등 한국 측 인사는 물론 나가사키현 지사와 나가사키시 시장 등 일본 측 인사도 위령비 제막식에 초대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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