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자. 애교(aegyo), 반찬(banchan), 동치미(dongchimi), 김밥(kimbap), 언니(unni), 오빠(oppa), 누나(noona), 한복(hanbok), 먹방(mukbang), 대박(daebak). 이들 10개 단어 중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등재된 한국어는 과연 몇 개나 될까? 정답은 10개 모두 다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의 하나인 OED가 이달 초 우리말 26개를 한꺼번에 새로운 표제어로 등재했다. 위의 10개 외에도 불고기(bulgogi), 잡채(jabchae), 갈비(galbi), 삼겹살(samgyopsal) 등 음식과 관련된 단어들과 K팝(K-pop), K드라마(K-drama), 한류(hallyu), 만화(manhwa) 같은 한국 대중문화와 연관된 말들이 추가됐다. 또 콩글리시(konglish), 스킨십(skinship), 파이팅(fighting)처럼 현지에선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식 영어 표현도 이번에 정식 등재됐다. 핸드폰, 오피스텔, 아이쇼핑 같은 콩글리시를 더 이상 '반쪽짜리 영어, 쭉정이 영어'라고 깎아내리지 않아도 되게 생겼다.
더욱 흥미로운 건 지난 1976년 김치(kimchi)가 처음 등재된 이후 45년 동안 OED에 오른 우리말이 불과 20개였는데 이번에 무려 26개 단어가 한꺼번에 등재됐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OED가 이번에 새로운 한국어 단어들을 무더기로 올리면서 발표한 글 '정말 대박이다(Daebak! The OED gets a K-update)'에 그 해답이 있다. "1990년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한국문화의 인기는 2010년대에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전 세계 영어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타일을 아우르는 'K트렌드' 어휘 26개를 이번에 보강했다."
결국은 '한국문화의 힘'이 이번 일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는 얘기다.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이 이룬 놀라운 성과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OED 편집자들이 스스로 밝혔듯이, 이 정도면 가히 대박(daebak!)이다.
언어를 수용한다는 것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을 선호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단순한 문화상품 소비가 아니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소비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몇 해 전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영화·방송·음악·만화·게임 등 문화콘텐츠 수출이 1% 증가할 때마다 소비재 수출 및 외국인 직접투자가 0.04~0.09%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코리안 웨이브, 즉 한류의 지속화와 세계화는 가슴 뿌듯한 일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같은 분야에서도 대박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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