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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北 정권보다 주민이 먼저다

[구본영 칼럼] 北 정권보다 주민이 먼저다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듬해 10월 독일은 통일됐다. 흔히 이를 잘살던 서독이 못사는 동독을 아우른 '흡수통일'로 부른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통독의 마침표는 동독인들이 찍었다. 1990년 3월 동독 주민들이 첫 자유선거로 구성한 새 동독의회가 서독 중심 독일연방 가입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처럼 한반도도 분단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22년도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평화의 물꼬를 텄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공허하게 들렸다. 동서독과 달리 남북의 통일은 여전히 아득해 보여서다.

문재인정부는 통일보다 평화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나 최근 국감 자료를 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횟수는 박근혜정부 때(26회)보다 문 정부(35회)에서 더 많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19일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쏘아올렸다. 세 차례 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만 빼고는 북한 정권이 이런 '평화 파괴' 행위를 거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문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도 중재했었다. 그래도 북한 비핵화는 불발됐다. 그 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은 이를 외교적 '판당고'(본래 스페인 전통춤이지만 쓸모없는 행동을 뜻하기도 한다)에 비유했다. '혹시 했으나 역시'라는 실망감의 표시였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한반도 종전선언 등 평화 쇼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정상회담도 가능하다"고 미끼를 던졌다. 그러자 북측이 SLBM을 쏘아 올렸는데도 외교·국방 장관이 "전략적 도발이 아니다", "도발이 아닌 위협"이라는 등 북한 정권 눈치 보느라 급급한 인상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접 만나기 어렵다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화상 판당고'라도 출 태세로 비친다.

그러나 설령 그런 이벤트가 성사된들 국민들이 예전처럼 감동할지도 의문이다. 북한 정권이 핵 무력(곧 평화 파괴 역량)을 내려놓지 않는 한 실질적 평화는 요원함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문·김의 판문점 도보다리 추억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연기 속으로 사라졌지 않았나. 정상 간 '판당고'와 관련, "둘이 살짝 손잡고 왼쪽으로 돌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제자리"(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라는 비유가 그래서 그럴싸하다.

동서독도 7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다만 통독이란 그림에 용의 눈을 찍은 주역은 정상들이 아닌 동독인들이었다. 역대 서독 정부가 주민 교류 확대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작은 발걸음' 정책은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 정권이 원조였지만, 헬무트 콜의 기민당 정권은 동독인들의 서독 방문에 더 통 크게 재정을 투입했다. 애초 서독의 통일 정책은 동독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문 정부가 귀감으로 삼을 대목이다. 더욱이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간 인적 교류 지표가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보다 되레 줄어들었다니 말이다. 임기 말 정부가 김정은 정권도 시큰둥한 종전선언에 연연할 게 아니라 탈북자를 포함한 북한 주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