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심사기한 차일피일 미뤄
올 상임위 심사 단 한건도 없어
'한달이내 10만명 동의'도 문제
"절차 개선·국회 책임감 가져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민동의청원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며칠 전 차별금지법의 국민동의청원 심사기한이 2024년으로 연장됐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장)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의 동의가 모여도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국회는 '무기한 연장' 법 조항을 내세워 청원 심사기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 달에 10만명'이라는 청원 성립요건 역시 까다로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는 "국민동의청원 제도의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올해 소관위 심사 '0건'
국민동의청원은 시민이 청원을 통해 국회에 법률 제·개정을 제안하는 제도로 지난해 1월 도입됐다. 청원은 성립 요건인 '30일 이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로 자동 회부된다. 이후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올라간다. 문제는 소관위에 회부된 대부분의 청원이 국회 계류 중이라는 것이다.
18일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등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10만 명의 동의를 달성한 국민동의청원은 22건으로, 이 가운데 소관 상임위 심사를 받은 청원은 단 3건에 그쳤다. 올해 입법 심사대에 오른 청원은 '0건'이다.
청원 심사가 늦어지는 배경에는 국회법이 있다. 국회법 제125조에 따르면 소관 상임위는 청원이 회부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해야 하며 심사기한을 한 차례 60일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심사를 요하는 청원으로 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원회의 의결로 심사기간의 추가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추가 조항이 붙어 국민동의청원의 심사 기한이 무기한 연장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법사위는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 등 국민동의청원 5건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로 연장했다.
이로 인해 심사만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청원들 마저 찬밥 신세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장은 최근 의료연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지난달 10만 동의를 얻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청원에 대한 국회의 빠른 심사를 촉구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힘겹게 모아냈던 10만 동의 청원이 차별금지법 사례처럼 (심사가) 미뤄질지 우려스럽다"고 호소했다.
■ "국회 책임감 있는 자세 필요"
시민단체 등은 국민동의청원 절차 전반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참여연대·차별금지법제정연대·4·16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민동의청원제도개선시민사회TF'는 지난 7월 시민사회 토론회를 열고 "헌법에 따른 청원권 보장을 위해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0만명의 국민이 동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는 일반 시민들에게 청원 처리 전 과정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며 "국민동의청원 성립 요건인 '실명, 한달 내 10만명 동의' 역시 해외에 비해 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유사 제도를 운영중인 영국은 기간 제한 없이 10만명 이상 동의하면 본회의에 자동 회부되며, 독일은 4주간 5만명 동의 시 공개회의 논의가 의무화 돼있다.
'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국회는 청원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높은 청원 성립요건을 내걸고 있다"며 "국회가 만들지 않은 법안 청원에 왜 국민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의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서 연구원은 ""심사기한을 연장하게 됐다면 (국회가)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그 사유를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야 하며, 책임감 있게 심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부·의원 입법 못지않게 국민동의청원 역시 10만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만큼 무겁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 부여된 권한을 책임감 있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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