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SNS 계정 만들어 관계 쌓은 뒤 "돈 필요하다"며 갈취
인출책 "조직원들과 공모한 적 없고, 돈 인출한 적 없다" 주장
재판부 "모의과정 없어도 범죄실현 의사 결합되면 공모관계 성립"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허위 SNS 계정을 만들어 피해자에게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쌓은 뒤 급전이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범죄 조직에서 인출책을 맡아 피해자의 돈을 인출·전달한 혐의를 받는 나이지리아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29)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편취금 600만원을 지급하라는 배상명령도 내렸다.
A씨는 '로맨스 스캠' 혹은 '비즈니스 스캠' 범죄조직인 '스캠 네트워크'(SCAM NETWORK)에서 조직원 지시에 따라 피해자로부터 가로챈 돈을 인출해 전달하는 인출책을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맨스 스캠은 허위 SNS 계정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쌓은 뒤 돈을 가로채는 범행 방식이다.
스캠 네트워크는 마치 보이스피싱 조직처럼 조직원을 관리하는 '총책', SNS 계정 등을 이용해 피해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유인책', 피해자의 돈을 받아낼 계좌를 조달하는 '조달책', 가로챈 돈을 인출해 전달하는 '인출책'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또 조직원끼리 약칭, 별명으로 불러 자신이 맡은 역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조직원들을 인식할 수 없도록 점조직화해서 운영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조직원 B씨가 지난 1~4월 사이 4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송금받은 7000여만원 중 1450여만원을 인출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지난 3월 말경 "시리아에 파병된 한국계 미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시리아를 떠나 부모님 고향인 한국에서 살고 싶은데, 달러가 들어 있는 상자를 한국으로 보내는데 통관비가 필요하다"며 거짓말해 피해자로부터 6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렇게 가로챈 돈을 지시에 따라 인출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지난 4월 26일에는 또 다른 피해자에게 접근해 "미국 의사인데 성남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갈 것"이라며 "한국 입국 후 자가격리를 하게 됐는데 코로나 방역 비용이 필요하다"고 속여 640여만원을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A씨는 240만원 가량을 인출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스캠 네트워크 조직원들과 공모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돈을 인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모의 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2인 이상이 모여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가 모였다면 공모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공모가 이뤄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해 공동정범으로 형사책임을 진다"며 "이런 의사는 반드시 사전에 치밀한 범행계획의 공모에까지 이를 필요는 없으며, 각자가 관련된 행위를 분담한다는 상호이해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로맨스 스캠 범행은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에게 커다란 피해를 발생 시켜 죄질이 좋지 않다"며 "그런데도 A씨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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