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전문가에게 듣는 개도국 성평등
남청수 코이카 젠더 전문관
언제 폭탄 떨어질지 모르는 내전 국가
여성인권 중요성 외쳐봐야 거부감만
학교 지으며 농지 개발해주는 등
그들이 필요한 것 먼저 제시하며 설득을
국내 최초 젠더 전문가인 남청수 코이카 젠더전문관은 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 등의 성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사회적·문화적 차이를 감안해 과학적인 정책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아름 기자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성평등 달성'이 단순히 여성의 지위 향상뿐 아니라 보편적인 개발협력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은 '성평등 중기전략'을 수립하고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기여하며 개발도상국 내 성평등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코이카는 여성이 가정과 마을, 사회 그리고 국가 차원의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여성의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코이카는 지난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국제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젠더 전문가를 상주인력으로 채용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2일 코이카 남청수 젠더 전문관과 인터뷰를 갖고 성평등 이슈와 성평등 관련 코이카의 사업들이 왜 중요한지를 짚어보고 앞으로 코이카의 성평등 전략과 계획 등을 들어봤다.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더욱 성평등과 관련한 이슈가 더 심각한 것 같다.
▲기본적인 인프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단계가 선진국과 비교해 더 많다. 이들 개도국은 절대적인 자원이 적기 때문에 자원을 분배하는 데 있어 약자에 해당되는 쪽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진다. 도덕적 혜택이나 의사결정 문제에 있어서도 사이클을 보면 여성들의 경우 태아 때부터 폭력에 시달린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인구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데 결정적인 계기가 초음파다. 태아 때부터 성별 구별이 가능해져 남아선호 사상을 가진 중국에서는 영아 살해가 만연한 상황이다. 이유식이나 모유를 먹일 때도 아들에게 먼저 먹이게 되니 여아 성장이나 생존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했어도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이에 둔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아프리카 국가에서 우리로 따지면 명동과 같은 거리에서 불시에 10명을 검사해보니 4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나왔다. 이에 현지인들에게 에이즈 관련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지인이 손을 들며 "에이즈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는 빈곤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더라.
―젠더 이슈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내전을 겪고 있는 국가들은 당장 내일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는 극단적인 여건들이 있다. 개발협력 헤드쿼터 입장에서 젠더 문제는 사각지대를 다루는 것이다. 또 보건 이슈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슈가 같이 걸려 있다. 여성 인권이 중요하다고 외치기보다는 다른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왜 안 보내냐고 물어보면 딸이 나무도 구해야 하고 물도 길어와야 한다, 또 부엌일도 해야 하고 물건도 팔아야 한다고 답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보냄으로써 반대급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학교를 지으며 농지를 개발해줘서 소득을 창출하게 해준다거나 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시켜서 딸이 취업하면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하는 식이다. 경제적인 접근을 하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 인권으로 접근하면 거부감만 일으킬 수 있다. 카불 시내 한가운데서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우선순위를 잡기는 어렵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여성들이 소외되는 부분이 걱정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직장들이 문을 닫거나 취업기회가 사라지고 있는데 해고의 1차 대상은 여성들인 경우가 많다. 개도국에서는 여성들의 취업기회가 적기 때문에 주로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빨리 정리되는 상황이다. 아이를 누가 봐줘야 하는 이슈가 걸렸을 경우에도 아빠가 아닌 엄마가 선택된다. 또 코로나19로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정폭력도 늘어나고 있다.
―왜 개발협력 분야에서 젠더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개도국에 병원도 세우고 의사도 양성을 시켜놨는데 출산 전 산전검사를 받은 지표가 올라가지 않았다. 왜인지 봤더니 병원은 지어놨지만 집에서 남편들이 산모를 못 나가게 하는 거다. 병원에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남편이 돈을 안 줘서 차비가 없어서 못 가고 설령 나라에서 의료를 위한 차비를 지원해줘도 못 간다. 첫 애가 아니라면 다른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없고 누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임신한 몸으로 혼자 가기 힘들어서다. 인프라와는 상관없는 사회적인 맥락이 필요한 것이다. 주변에 지지세력이 되어줄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게 제일 힘들다. 그렇다 보니 다른 부분처럼 빨리 전개되기 힘들다. 사업효과성을 중요시 하지만 젠더 분야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 목표는.
▲젠더 사업이 많이 늘어났지만 종류가 보건 쪽에 편중돼 있다. 여러 사업분야에 젠더를 넣어야 할 부분이 많다. 남자나 여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젠더 이슈가 있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다면 농사를 다 짓고나서 남자들은 다른 일을 하지 않지만 여성들은 똑같이 농사를 짓고 집에 와서도 집안일을 한다. 또 산출물이 생기는데 수입의 배분이 달라진다. 도로를 건설한다면 중노동이다 보니 외부 노동자가 많이 들어와 성매매 수요가 발생하는데 노변에서 노점상을 하던 여성들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생업기반이 사라지자 성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개발협력 담당자들이 인프라 분야를 젠더와 상관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통적인 인프라 상황에서도 여성 전문가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의 사업을 발굴하는 게 우선순위 중 하나다. 현지상황을 아는 사람에게 젠더 이슈를 바라볼 수 있는 눈들을 키워주면 현지 맥락에 맞도록 사업을 발굴할 수 있다. 또 개발 협력의 추세가 효과성, 데이터 등을 중시하고 있어서 여성학 부분에 있어 객관적인 자료, 흐름에 맞는 과학적인 근거를 만드는 기반을 쌓고 싶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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