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고백 하나 한다. 대학생 때 생활비 100만원을 대출한 적이 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대학생 누구나에게 2%가 안 되는 저금리로 빌려주는 돈이었다. 생활비가 급한 건 아니었다. 나는 과외를 하고 있었고,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도 받았다. 대출을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 근사한 졸업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과외비가 들어오는 날은 멀었고, 수중에 충분한 돈이 없었던 나는 쿨(?)하게 돈을 빌렸다. 선물을 살 때는 좋았다. 문제는 돈을 갚을 때 발생했다. 100만 원쯤이야 쉽게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대출 다음 달부터 원금 10만원씩을 상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1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나는 카페에 가는 대신 믹스커피를 타먹어야 했고, 꾸준히 다니던 헬스장도 관둬야 했다. 그러고도 돈이 부족해서 돈을 빌려서 돈을 갚은 적도 있었다. ‘빚은 무서운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특정 대선 후보는 최근 외부 강연에서 “빚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말해 고개를 꺄우뚱하게 만들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 누구나에게 3% 금리로 1000만원을 빌려주는 ‘기본대출’이 논의되고 있다. 대출이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환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금융 건전성이 악화되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 전체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햇살론과 같은 서민대출 부실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정부가 대신 갚아준 서민금융 대출액이 2915억 원에 달한다. 기본대출이 또 다른 기회를 만드는 정책이 될지, 금융 건전성만 악화시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구더기 때문에 장이 썩을 수도 있다. 자칫 기본대출이 '기본복지'가 아닌 신용자만을 양산하는 '기본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다.
better@fnnews.com 오진송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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