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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터키 외환위기와 한국대선

[강남시선] 터키 외환위기와 한국대선
대통령이 해외순방국을 선정할 때 고려하는 여러 조건 중 하나가 바로 6·25 참전 여부다. 당면한 외교·경제 이슈가 없어도 순방국 인근에 참전국이 있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방문한다. 대통령은 임기 중 가능하면 많은 참전국을 방문해 생존한 참전용사 또는 자녀들의 손을 맞잡는다. 이는 정권과 상관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호주 역시 6·25 참전국 중 하나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참전을 결정했고 참전용사만 1만7000여명에 달한다. 아직도 42명의 호주 참전용사들이 우리 땅에 잠들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2개 6·25 참전국 중 호주보다 더 많은 참전용사를 보낸 곳이 있다. 바로 터키다. 터키는 6·25 당시 2만1212명이 참전했다. 규모로 보면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대 파병국 중 하나다. 전투 중 966명이 전사하고 1155명이 부상당했다. 터키군의 용맹은 아직도 회자된다. 특히 김량장리와 151고지전투 등에선 총검을 든 백병전으로 승리함으로써 유엔군의 사기를 높였다. 그래서 그런지 터키 사람들도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맞이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지난 2012년 2월 터키 수도 앙카라를 방문했을 때 피부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터키에 K팝 열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한 한류 팬은 앙카라대학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K팝 공연이 터키에서 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한국과 터키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는데 경제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환율이 말해준다. 10년 전 당시 환율은 터키 1리라에 645원 정도. 23일 현재 환율은 99원이다. 지난 20일에는 터키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68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10년간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셈이다. 터키의 위기는 정치에서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총리에 오른 뒤 20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다. 문제는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 논리를 무시하고 포퓰리즘을 쏟아 내고 있다는 것. 물가가 급등할 때 금리를 올리는 대신, 최저임금을 50% 인상했고 오히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자는 죄악이라는 이유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는 리라 폭락으로 곧장 이어져 소위 '환율의 보복'을 받고 있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터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50조원 받고 50조원 더'라며 '묻지마 더블'을 외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라는 비상사태이긴 하지만 현 국민에겐 세금을, 미래 세대엔 빚을 안겨주며 퍼주는 형국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지만 발권 국가가 아닌 이상 포퓰리즘은 '환율의 보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그랬고 터키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 희망이 있는 것은 또다시 제시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반대한 현명한 국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