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17명 투입해 초동 조치 등 조사 실시
‘9·19 군사합의’의 부정적 파급효과 나타나
지난 2019년 12월30일 22사단 장병들이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서 해안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합참은 1월 2일부터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 등 17명을 현장에 투입해서 군 초동 조치와 이동 경로 등 당시 상황 전반을 현장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월북자에 관해 "미상 인원 관련해선 현재 관계 기관과 공조해 확인 중"이라며 월북 발생 후 북한군 동향에 대해 "현재까지는 어제와 상황 관련해서는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으며 추가로 설명할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2일 국민 보호 차원에서 대북통지문을 발송했고 현재까지 북한의 답변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민간인 통제선 일대 CCTV(폐쇄회로 카메라)에 지난 1일 낮 12시께 이 월북자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명확한 영상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1일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월북한 인원은 '2020년 11월 귀순했던 30대 초반의 탈북민'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이 탈북민의 간첩 활동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군인에게 '경계실패'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더우기 한번 실패는 ‘실수’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실력’이다. 접경지대 경계의 실종된 실력은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군의 본분을 잃어버렸다는 질타받을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 들어 군당국은 수많은 경계실패로 지탄을 받아왔다. 2019년 ‘삼척항 귀순’은 단호한 대북 군사대응을 강조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군의 허술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2021년 1월 동일한 부대인 22사단 지역 내에서 ‘오리발 귀순’이 발생하자 군당국은 “22사단 부대구조 재창설”과 “AI활용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내세우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은 신년 1월 벽두부터 경계실패가 재현됐다.
현장병력의 안일한 경계의식과 미온적 대응도 문제지만 현 정부와 군당국이 자초한 정치적, 제도적, 문화적 측면도 적지 않다는 해석이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통해 우리 국민으로 추정되는 1명이 월북한 가운데 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뉴스1
반 센터장은 "우선 정치적 측면에서 군의 '대적관 붕괴'에 책임이 크다"며 "주적개념 없이 최전방지역 경계의식이 높아질 리 만무하며 대적관이 사라진 군대문화에서 군사대비태세나 경계태세는 예전만큼 중요한 임무로 자리 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현 정권의 ‘평화담론’에 매몰돼 국방백서에서 주적개념을 없애고 북한군을 평화를 논할 대상으로 조성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 센터장은 이어 "정치적 타협의 일환으로 탄생한 ‘9·19 군사합의’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이제 막 나타나고 있다"며 "접경지대가 군사적(작전 태세의)완전성을 보장해주는 지역이 아닌 군사적 긴장완화라는 명분으로 무장해제해야 하는 지역처럼 치부된 결과는 경계태세 이완"이라고 지적했다.
9·19군사합의는 기본적으로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이었지만 남북 군당국간 신뢰구축 증진에 기여한 것은 없고 경계태세만 이완시켰다는 방증이 이러한 반복되는 경계실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9·19군사합의는 기본적으로 접경지대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킨다는 취지에서 핵심병력과 무기를 철수시키고 훈련도 약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접경지대에서 군사대비태세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 경계실패로 정부당국과 군은 이러한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러면서 반 센터장은 "2021년 22사단에서 경계실패 문제 발생 시 'AI 과학화경계'가 처방으로 제시된 바 있지만 전술·경계작전 등의 용병술 차원의 노력 없이 기술에만 의존한다면 군사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지나친 기술의존론은 도리어 이번 사례처럼 경계태세만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 국방부는 감시장비 과학화 등 물리적 자산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 바 있지만 이번 사건은 해이해진 ‘정신전력’을 정상화하지 않고는 물리적 전력만으로 경계태세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경고의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새해 첫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월북자가 발생 동부전선 육군 제22보병사단을 비롯 육군에 비상이 걸렸다. 2일 오후 민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남방한계선부터 북한 지역 군사분계선(MDL) 안쪽 구선봉까지 보인다.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 된다"며 "더 큰 문제는 사건 자체보다 업무 과부하·인력 부족·보고체계 부실·매뉴얼 미준수 등의 미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 들어 우리 군에서 경계 실패, 명령 불복종, 급식 부실, 성추행·성폭행 사건 등이 끊임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송 교수는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2021년 한국군은 군사력 순위 6위로 세계 138개국 중 선진군대임에 분명하다"며 "그러나 문제는 외형상 멀쩡하지만 치유가 힘든 말기암 환자가 된 격으로 내부가 치유 불능의 중병을 앓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송 교수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적 민군관계(civil-military relations)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며 "군통수권자가 군대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이 분명하지 않은 군대는 거대한 소비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발생하는 사건들은 증세에 불과하며 근본 원인을 치유하지 않으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들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최우선 과제는 민군관계의 기본을 정립하고 '군대가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물리적 능력과 함께 '정신적 의지'를 바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군당국은 반복된 경계실패를 현장부대의 일시적 작전태만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평화집착형 정치적 블랙홀, 대적관 없는 군대, 전술이 배제된 기술의존적 행태 등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 인식을 갖고 전 세계 군 평균 최고 학력집단의 ‘무능해진 군대’를 하루속히 ‘정상군대’로 복원시켜야 할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