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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네거티브 선거, 그 후가 두렵다

[구본영 칼럼] 네거티브 선거, 그 후가 두렵다
새해 벽두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집 부근 지하철역엔 플래카드가 찬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얼굴의 눈을 '상습허위경력자'라는 검은 글씨로 가리고 "이런 영부인 괜찮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밑의 '~촛불행동연대'라는 작은 글씨를 보지 않더라도 친여단체가 내건 현수막임을 알 수 있었다.

선거전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정책이나 비전 제시보다 상대 후보나 그 가족의 약점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측이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를 집중 공격하자 윤 후보 캠프도 이른바 '혜경궁 김씨' 논란을 재점화하는 식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저급한 막말을 쏟아내며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 것이란 의심을 샀던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를 다시 소환하면서다.

그러잖아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이는 대장동 게이트나 처가 비리 의혹 등 이, 윤 두 후보 모두에 얼룩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기 때문일 듯싶다. 그러니 각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들은 유권자들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학에도 '부정성(negativity) 효과이론'이란 게 있다. 즉 부정적 내용이 긍정적 내용에 비해 강한 메시지이며, 설득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이론이다. 세계 각국의 현실 정치판에서 이 이론이 맞아떨어진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1964년 미국 대선은 네거티브 선거전의 고전적 사례다. 당시 쿠바 봉쇄로 소련과 핵전쟁의 위기를 넘긴 직후였다. 암살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승계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선거 초반 대소 강경파인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자 민주당이 핵전쟁 공포를 자극하는 '데이지 걸' TV 광고로 이를 뒤집었다. 귀여운 소녀가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하나 둘 떼는 동안 카운트다운이 "제로"에 이르자 클로즈업된 소녀의 눈동자에 핵폭발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연출하면서다.

정치 선진국 독일도 네거티브 공세가 잘 먹히긴 마찬가지였다. 동서독 화해를 이끈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4년 비서 귄터 기욤이 동독 간첩임이 밝혀지자 사퇴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사유일 뿐 소속당 사민당 간부들이 그의 성추문을 물고 늘어진 게 결정타였다. 독일 통일을 일군 헬무트 콜 총리도 통독 과정에서 기민당이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조달했다는 의혹으로 공격을 받다 5선에 실패, 정계를 은퇴했다.

콜의 후임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포지티브 캠페인에 주력했다. 사민당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고비용·저효율 구조인 노동·복지 개혁을 밀고 나갔다. 그는 결국 3선에 실패해 네거티브 선거전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비전인 하르츠 개혁은 통독 후유증을 앓던 독일 경제를 살려냈다.

그래서 대선 이후가 걱정스럽다. 각 후보 가족이나 소속당 대표의 과거 사생활을 들춰내 저격할 정도로 선거전이 막장극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이대로 가면 누가 이기든 진영 간 불신의 골을 더 깊이 파느라 구조개혁 논의를 포기한 대가는 미래세대가 치러야 한다. 옥석을 가려낼 유권자의 분별력이 절실한 이유다. 프랑스 정치학자 J 매스트로는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고른다"고 했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