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시청 인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자원부국임에도 불구하고 연료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9년 가을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의 해외문화유적 답사차 카자흐스탄에 갔었다. 당시 만주나 시베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광활한 초원이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국토 면적(272만5000㎢)이 세계에서 9번째였다. 그러니 자원부국인 건 당연하다. 실제로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일 뿐 아니라 우라늄 등 희소 광물의 보고다. 그런데도 난방 연료가 모자라 지방의 한 호텔에서 벌벌 떨며 잤던 기억이 난다.
요즘 카자흐스탄 정정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새해 들어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옛 수도 알마티 시청사가 불탔다. 현 수도인 누르술탄의 국제공항도 한때 시위대에 점령됐다. 급기야 1991년 독립 때까지 종주국이었던 러시아가 며칠 전 사태를 진정시키려 최정예 부대를 투입했다.
세계사는 흔히 땅과 바다 등 공간을 둘러싼 투쟁사로도 풀이된다. 지정학이 지리적 위치가 정치·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지경학은 경제적 목적에 초점을 맞춘 공간 해석이다. 작금의 카자흐스탄 사태는 발생부터 지정학적·지경학적 요인이 혼재돼 있다. 29년 장기집권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 대통령의 실정과 부패는 지정학적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폭발시킨 뇌관은 지경학적 변수인 연료값 폭등이었다. 대규모 유전·가스전이 있는데도 정부가 수급 관리에 실패한 대가다. 이로 인한 반정부 시위는 다시 지정학적·지경학적 파장을 부르고 있다. 우선 러시아 특수부대의 진주로 서구권과 러시아 간 대치가 첨예해졌다.
불똥은 세계 경제에도 튈 참이다. 벌써 카자흐스탄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로 국제 유가가 꿈틀대고 있다. 에너지 자급률이 바닥을 기는 한국이라 카자흐스탄발 '지경학적 리스크'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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