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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수탁위 주주대표소송 '관치 그림자'

[테헤란로] 수탁위 주주대표소송 '관치 그림자'
지난해부터 재계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이슈가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강화를 넘어 주주대표소송에 나서겠다고 공언해서다. 주주대표소송은 기업 경영인이나 총수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됐을 경우, 연기금이 해당 경영인에게 소송을 제기해 손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하던 소송권한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라는 산하 조직에 맡기려 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 먹튀' 사태에서도 보듯이 경영자의 실수로 다른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는 분명히 생긴다. 이 경우 주주들이 문제를 일으킨 경영진을 혼내주는 것은 일견 정당해 보인다. 국민연금도 기본적으로 '주주' 자격과 권리를 행사하는 데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의도에 있다. 주주권한 행사 강화와 대표소송제를 언급하는 이면에는 관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연기금은 말 그대로 우리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불리는 게 대원칙이 돼야 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때때로 정권이 기업들을 '주무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조했는데, 이는 기관투자자들이 적극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업들에 '군기반장' 역할을 하라며 국민연금의 등을 은근히 떠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 논리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주주대표소송의 권한은 원래대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에 두는 게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투자를 책임지는 조직이기에 소송에 관한 결정과 책임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주주대표소송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수탁위라는 별동대에 맡긴다는 것은 그 목적성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여권이 집권 초기부터 주장했던 대표 정책이 재벌개혁이다. 이를 위해 꺼내든 카드가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몇 해 동안 기업 총수나 경영인들이 잘못을 저질러 처벌받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 사법 시스템이 개입할 범위가 아닌 경우에는 시민사회의 냉혹한 여론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촘촘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데 굳이 국민연금까지 나서 기업의 감시와 처벌자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져볼 만하다.

현 정권이 얘기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영어의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연기금이 주주를 대신해 기업들의 전횡을 감시하는 집사가 돼야 한다는 개념이다. 국민연금이 집사 노릇을 제대로 하겠다는 건 환영이다. 그러나 정권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을 위한 집사가 돼야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