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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치고 14시간 기다렸어요" 한파 이긴 명품 오픈런 [현장르포]

서울 시내 백화점
영업 30분전 명품관 앞 100여명
"전날 저녁부터 줄서 대기표 1번"
"값 계속 오르니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 보복소비 새해에도 계속

"텐트 치고 14시간 기다렸어요" 한파 이긴 명품 오픈런 [현장르포]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 앞에서 사람들이 텐트와 등산용 접이식 의자를 설치하고 대기하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전날 밤 8시부터 기다려서 대기순위 1번 받았습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롱패딩 차림에 두터운 담요를 두르고 있던 이모씨(26)가 이같이 말했다.

13일 서울 체감온도가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강추위에도 명품을 사기 위한 '오픈런' 열기는 식지 않았다. 시민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추위를 견디며 노상에서 밤을 지새웠다. 서울 명동 백화점 앞에는 영업 전날부터 대기자가 나타나는가 하면 텐트를 설치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14시간 기다렸어요" 텐트·침낭 등장

파이낸셜 뉴스가 찾아간 이날 새벽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명품관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 오전 7시30분께만해도 25명 남짓이던 대기자는 백화점 영업 30분전인 오전 10시가 되자 100여명까지 늘었다.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방한용품으로 중무장을 했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모자를 눌러쓴 이들은 등산용 접이식 의자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일부 대기자들은 침낭까지 준비했으나 강추위와 칼바람은 피할 수 없는 듯했다.

재고가 떨어지기 전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선 낮은 대기순위가 필수다. 이 때문에 전날 저녁이나 당일 새벽부터 대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최소한 당일 새벽 6시께에는 도착해야 20번 이하의 대기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날 오후 9시부터 줄을 서 대기순위 2번을 받았다는 오모씨(43)는 "여자친구 선물로 샤넬 가방을 사주려고 왔다"며 "오픈런은 처음인데 날씨까지 추워서 쉽지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회사에 연차를 쓰고 오픈런을 하러 왔다는 김모씨(31)는 "명품 가격은 계속 오르니 지금 사는 게 가장 싸다고 생각한다"며 "사놓고 시간이 지나면 중고로 팔 수도 있으니 일종의 투자 개념도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로 보복소비 표출"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141억6500만달러(약 17조원)로 전년대비 4.6% 성장했다. 업계에선 2030세대의 구매 비중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구매층이 넓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명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구매자 대신 줄을 서는 아르바이트까지 생겨난 요인도 작용했다. 이날 롯데백화점에서 만난 임모씨(39)는 "명품구매 대행 알바만 6번 해서 60만원을 벌었다"라며 "평균 시급은 1만원 수준이고 기다리는 시간에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열된 명품시장을 언급하며 코로나19로 인한 보복소비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억제된 욕구가 명품 소비로 표출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부유한 계층만 명품을 소비했다면 현재는 유행처럼 구매층이 넓어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명품은 희소성이 담보돼 있다 보니 소유의 기쁨이 크고, 투자의 가능성까지 생긴다"면서 "앞으로 커다란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지금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