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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보건소 업무 마비… 사각지대 놓인 에이즈 관리

서울 25곳 중 4곳만 익명검사
HIV검사횟수 절반 이상 줄어
결핵검사는 서대문구 1곳뿐
사회 취약계층 의료공백 위기

코로나로 보건소 업무 마비… 사각지대 놓인 에이즈 관리
코로나로 보건소 업무 마비… 사각지대 놓인 에이즈 관리
14일 용산구 보건소 입구에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 모든 보건소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고 적혀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보건소 업무가 코로나19 대응에 편중 되면서 기본 업무는 뒷전에 밀리고 있다. 서울 내 보건소 대다수에서 기본 업무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와 결핵 검사가 중단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질병 검진 체계가 무너져 향후 보건 사각지대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에이즈 검사, 고작 25곳 중 4곳

16일 파이낸셜뉴스가 서울시 내 보건소 25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에이즈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는 4곳(강남구, 강북구, 도봉구, 은평구)에 불과했다. 전국 보건소는 에이즈 검사를 무료, 익명으로 제공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대응 인력이 대거 필요하자 검사를 중단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기준 7곳까지 줄었던 에이즈 검사 보건소는 올해 들어 절반 가까이 더 줄었다.

이마저도 에이즈 정밀 검사가 가능한 지역구는 서울시 도봉구 밖에 없다. 나머지 지역구는 정밀 검사가 아닌 신속 검사로 에이즈 발병 여부를 판단했다. 은평구의 경우 특정 요일에만 검사를 하는 방식으로 축소 운영 중이다.

에이즈 검사는 보건소의 역할이 크다. 남들에게 알리기 힘든 질병 특성상 익명 검사가 필수적인데, 보건소가 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에이즈 관련 민간단체는 "에이즈 검사의 경우 일반 병원에서도 가능하지만 익명 검사가 까다롭다"며 "익명 검사가 없을 경우 에이즈 위험군이 검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실제 에이즈 유병 위험군은 우리 곁에 사라졌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최근 10년간 전국 보건소 HIV 선별검사 현황(2011~2020)'에 따르면 매년 40만명이 넘던 에이즈 검사 횟수는 2020년 17만8653회로 전년 대비 59.4%나 급감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에이즈 진단실험실 운영이 축소 또는 중단된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다른 업무 손 놓아"

에이즈 뿐만 아니라 결핵 등 보건소의 다른 기본 업무도 마찬가지다. 보건소 25곳 중 결핵 무증상자의 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보건소는 오직 서대문구에 불과했다. 다른 보건소는 유증상자를 대상으로 역학검사는 실시하고 있지만 자발적 검사와 회사 제출용 결핵검사는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시 모든 보건소에서 1차 진료와 건강진단결과서 발급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

전국의 보건소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은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에이즈 환자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응급 상황일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14일 본지가 찾아간 용산구 보건소는 정문이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천막으로 막혀 있었다. 보건소 입구에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 모든 보건소 업무를 잠정 중단한다'고 적혀 있었다. 보건소 업무 중단은 2020년 2월 27일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산구 보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검사에 집중하기 바빠 다른 업무는 손을 놓고 있다"며 "코로나19 외 보건소 업무로 오는 사람은 하루에 5명 내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칫 보건 사각지대 장기화로 의료 공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의료공백인권실태조사단은 "에이즈 환자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들은 적은 수의 공공병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공공병원이 아니면 관리가 어려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경우 의료공백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