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크라이나 예비군이 22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훈련하고 있다. AP뉴시스
독일 해군 참모총장이 러시아와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에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끝에 결국 사퇴했다.
카이-아킴 쇤바하 해군중장은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그저 '존중'일 뿐이며 크림반도는 결코 우크라이나에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커지자 결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사임했다.
그의 발언으로 에스토니아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려던 계획을 가로막고 나서 대러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독일이 실상은 러시아 편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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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독일 감정 골 깊어져
22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쇤바하 중장의 발언은 독일 관리들의 비협조적인 행동의 한 패턴일 뿐이라며 독일을 싸잡아 비난했다.
쿨레바 장관은 트윗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독일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군사적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펼친 것뿐만 아니라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준 것을 고마워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렇지만 독일의 현재 발언들은 실망스럽다"면서 "그동안의 지원과 노력에 반하는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대에 최근 수주일에 걸쳐 병력 10만6000명을 배치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의 안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군사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비롯해 1997년 이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에서 뺄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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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공급 차단·노르드스트림2 가스관으로 갈등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러시아 압박에 대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에 그동안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왔다.
특히 얼마전에는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이 FT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무기 공급을 막은 독일의 조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레즈니코프 장관은 나토 지원조달청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드론요격용 소총과 대저격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독일이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독일의 일관된 노르드스트림2 지지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높여왔다. 노르드스트림2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발트해를 통과해 독일로 직접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가스관이다.
우크라이나는 가스관 통과에 따른 수수료 수입과 천연가스 공급 차단이라는 불이익과 함께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잃게 된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도 부정적이었다. 노르드스트림2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에 경제제재를 가하면서까지 독일을 압박했다.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심화돼 안보위기를 부를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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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 러시아에 완전히 빼앗겼다는 것은 팩트"
우크라이나가 독일의 모호한 입장을 비판하는 와중에 쇤바하 중장이 인도 싱크탱크와 인터뷰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양국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동영상에서 쇤바하는 서방이 푸틴을 우크라이나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면서 러시아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서방이 필요로 하는 오랜...또한 중요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푸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존중"이라면서 "신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은 비용이 적게들고, 심지어 아예 돈이 안 들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쇤바하는 "그가 정말로 원하는 존중을 해주는 것은 쉽다"면서 "그는 또 그럴만한 자격도 있다"고 말했다.
쇤바하는 이어 "크림반도는 이제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것이다. 결코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서 "이게 팩트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서방의 공식적인 입장과 배치된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불법이며 우크라이나에 다시 귀속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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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실수였다"...트윗 뒤 사퇴
독일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독일 국방부는 쇤바하의 발언은 발언 내용이나 언어 선택에 있어 독일 국방부의 견해와 어떤 관련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쇤바하도 트윗에서 자신의 발언은 그저 현 상황에 관한 개인 의견일 뿐이라면서 독일 연방정부의 공식 입장과 연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뒤에 추가 트윗을 통해 자신의 발언이 "사려깊지 못했으며 상황을 오판한 것이었다"면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됐다. 명백한 실수였다는 점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쇤바하는 트윗으로 실수를 인정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퇴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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