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유령법인 돈 빼돌려 해외부동산 투자… 수백억 자산가 대거 적발 [역외탈세에 철퇴]

국세청, 기획탈세 44명 세무조사
내부거래 통해 사주일가 재산 증식
500억 넘는 재산 가진 부자도 포함
반도체 다국적기업 불공정도 적발

유령법인 돈 빼돌려 해외부동산 투자… 수백억 자산가 대거 적발 [역외탈세에 철퇴]

#1.이름이 널리 알려진 국내 식품기업 창업주 2세인 A씨는 자녀가 체류 중인 해외에 아무 기능도 없는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내부거래를 통해 이익을 유보한 후 자금을 빼내고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해 차익을 남겼다. 이를 또 현지 거주 자녀에게 증여해 고가아파트를 취득하게 하고, 체류비도 줬다. 하지만 세금신고는 누락했다.(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이용한 부자탈세)

#2.글로벌 건설기업인 B사는 국내 고객사와 제조 공정시스템 설치 등 건설용역을 제공하는 계약을 하고 임직원을 파견했다. 사실상 고정사업장을 국내에 설치, 6개월 이상 건설공사를 했다. 하지만 설계·제작, 설치, 감독 등의 계약을 쪼개어 체결해 고정사업장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리고 법인세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정사업장 은폐를 통한 다국적기업 탈세)
국세청이 국제거래를 통한 기획탈세 혐의자 44명(법인)을 확인하고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해외에 이름뿐인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국내법인과 내부거래한 것처럼 속이거나 유보금 등을 빼돌린 뒤 해외 주식·부동산을 매입하고 세금신고를 하지 않은 수백억원대 자산가들이 무더기 적발된 것이다.

22일 국세청은 국제거래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면서 세금은 내지 않는 자산가와 국내에서 사업장을 은폐하고 탈세한 다국적기업 등을 집중 점검한 후 이 같은 내용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국세청 김동일 조사국장은 "일반인들이 실행하기 어려운 국제거래를 이용, 자산을 불리고 세금을 탈세한 자산가들을 심층 분석하고 반도체·물류·장비 등 호황산업을 영위하는 다국적기업이 국내사업장을 은폐하고 탈세하는 등의 불공정 역외탈세도 집중적으로 검증했다"고 밝혔다.

역외탈세 혐의자는 우선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이용한 탈세다. 21명이 세무조사 대상이다. 이 수법은 과거에는 일부 자산가만 이용했는데 최근에는 다수의 자산가가 이용하면서 새로운 역외탈세 통로로 고착화됐다고 국세청은 평가했다. 21명 중 자산 기준으로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은 9명,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은 3명, 300억원 이상 500억원 미만은 2명, 500억원 이상은 1명이다. 현지법인이 사주의 재산증식, 자녀에게 재산증여, 자녀사업 현지지원 통로로 이용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탈세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치밀하게 기획해 실행하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다국적기업의 고정사업장 은폐를 통한 세금탈루다. 13개 외국법인도 조사대상이다.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없거나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법인세 등의 신고의무가 없다는 것을 활용한 탈세다. 고정된 사업장이 없으면 법인세 신고 없이 원천징수로 납세의무가 끝난다.

단순 업무지원 용역으로 위장해 국내 고정사업장을 은폐하거나 단계별 분할수주 계약을 통해 은폐하는 방법 등이 주로 사용된다.

불공정 자본거래 등을 통한 법인자금 유출도 탈세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10개 기업법인이 조사대상이다. 예를 들면 반도체 집적회로 등을 설계·제작하는 C라는 정보기술(IT) 기업은 해외에 여러 현지 공장이 있다.
이 기업은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현지법인을 청산한 것처럼 위장해 투자액을 전액 손실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세소득을 축소했다. 불공정 자본거래인 셈이다.

김 국장은 "역외탈세가 새로운 탈세통로나 부의 대물림 창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다국적기업에 대해서도 과세주권 행사 차원에서 강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