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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진단上]유행 정점 향해 치닫는데…전문가 의견에 귀 닫은 정부

기사내용 요약
잇단 방역완화·대선에 확진자 늘어날 전망
확진자 규모 커지면 중환자 관리여력 영향
중환자 수 이달 말~내달 초 정점 달할 듯
중환자 병상 유행 정점 지난 후 부족 전망
어린이 감염 확산, 전체 유행 견인할 수도
"방역정책 의료계와 긴밀한 협의 필요해"

[방역진단上]유행 정점 향해 치닫는데…전문가 의견에 귀 닫은 정부
[수원=뉴시스] 김종택기자 = 새학기를 맞은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 초등학교에서 1학년 신입생들이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받고 있다. 2022.03.02. jtk@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대다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정점을 향해 치닫는 시점에서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닫고 방역을 섣불리 완화하면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리고 소아·청소년,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르면 4일 사적모임 제한을 기존 6명으로 유지하되,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을 밤 11시로 1시간 늘리는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일 새 학기가 시작된 데다 역학조사 중단, 코로나19 확진자 가족 격리의무 해제, 방역패스 폐지 등 잇따른 방역 완화 정책, 오는 9일 치러질 대선으로 신규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날 일만 남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제는 신규 확진자 규모가 커지면 2~3주 가량 시차를 두고 위중증 환자도 늘어나 중환자 관리 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유행이 정점에 도달하려면 2주 정도 남았는데, 정책적 판단들이 정말 많이 아쉽다"면서 "듣지도 않을 (전문가)의견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교수는 "중환자 수는 이달 말에서 내달 초 하루 2500명 정도에서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면서 "정부가 준비한 중환자 병상 수가 2500개여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2일 기준 중환자는 762명으로 집계되지만, 실제 사용되는 병상은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1376개"라면서 "중환자 병상은 유행 정점이 지난 후 모자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환자 수보다 사용되는 병상 수가 훨씬 더 많은 것은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위중증으로 진행되기 쉬운 백혈병·암 환자 등 기저질환자 감염에 대비해 일부 비워둔 중환자 병상도 포함돼 있어서다. 병상이 남아 있어도 현장에서 바로 투입 가능한 의료 인력이 부족해 실제 가동할 수 없는 병상까지 고려하면 의료 대응 여력은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3일 페이스북에 "(현재 확산 추세라면)의료진들과 의료체계가 버틸 수 있겠느냐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했더니 (정부는)거리두기 완화로 답하고, 분만, 투석, 수술 등 응급 환자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더니 뻔한 답만 내놓고 있다"면서 "2년 간 희생한 의료진들은 그냥 버티라고 하면 버텨야 하는 거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확진 산모 분만 대응과 관련해 일부 산부인과병원 대표들을 불러 "확진된 임산부가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분만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현장 곳곳에선 이미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환자를 돌보다 감염된 의료진이 속출하면서 진료나 수술, 시술이 취소돼 차질이 빚어지는가 하면 출산, 투석 등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자택에서 격리 중 병세가 악화된 50~60대, 영아 등이 제 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 교수는 "오늘 받아야 하는 투석을 받지 못한 환자가 재택치료 담당 간호사에게 하소연을 했다"면서 "보건소 직원이 내일 외래 투석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전화를 돌렸지만 확정을 받지 못했고 내일 오전에 다시 찾아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간호사가)혹시 새벽에라도 호흡 곤란이 오면 중증 병상으로 입원해서 CRRT(24시간 연속투석)하게 해 드린다고 말했더니 위험한 상황이 되기 전에 해결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며 답답해했다.

이 교수는 이달 중 하루 확진자가 3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이 경우 중환자는 2000~4000명, 격리자는 200만 명에 달해 의료체계 뿐 아니라 사회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잇따른 방역 완화 정책으로 소아·청소년, 노인 등 취약계층이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확진자 가족 격리의무 해제'와 관련해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동거인이)확진된 가족과 밀접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 가족 내 전파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가족 간 감염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백신을 맞지 못한 5~11세 어린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23일 5~11세 백신 접종을 허가했다. 방대본이 이달 중 접종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소아·청소년 감염은 이미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마지막주(20~26일) 0~9세 확진자는 하루 평균 513명으로, 전주 대비 무려 82% 늘어났다. 0~9세 누적 사망자도 5명이다.

엄 교수는 "(새 학기)등교가 전체 유행을 확산시키는 데 분명히 기여하게 될 것"이라면서 "어린이들은 위중증 환자 발생이 워낙 적고 치명률이 낮지만 어린이에서 유행이 커지면서 전체 유행도 아주 커질 가능성 높다"고 짚었다. 이어 "실제 독일은 오미크론 유행이 한창일 당시 전체 확진자의 60%가 어린이·청소년이었고 일부 어린이는 입원을 하거나 중환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백신학회 회장)도 "신규 확진자 수, 기초감염재생산지수(확진자 1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나타내는 수치), 사망률 등 각종 방역지표들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중시한다면 브레이크를 밟아 신규 확진자 발생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코로나19 관련 의료·방역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소통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종식과 빠른 일상회복을 위해 열린 자세로 정부와 계속 협력해 나갈 방침이지만, 중요한 방역정책과 신속히 추진해야 할 현안이 있다면 가장 먼저 의료계와 긴밀히 협의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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