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악화된 양국 국민감정 해소
- 한한령 해제 분위기는 그나마 긍정적...정부, 중국에 적극 촉구해야
지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입장식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한국과 중국이 가장 신속하고 과감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악화된 양국 국민정서 해소다. 올해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양국 국민은 상대방을 향해 비난을 이어갔고 네티즌들도 서로 상대국 언론보도나 소셜미디어(SNS)에 몰려가 테러를 일삼았다.
한중 정부끼리 정책적으로 모순되거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중국 정부는 밝혀왔다.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더 이상 한국이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할 존재다.
하지만 양국 국민들은 물고 뜯으며 할퀸다.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이후 불거진 감정이 정점에 치닫고 있다. 문화, 역사, 스포츠, 정치, 경제 등 전방위적이다.
중국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9일 “(국민감정 악화의)속도가 너무 빠르고 깊다”면서 “서둘러 멈추게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반중·반한 중심의 20~30세대
사드 이전인 2015년 9월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2차 세계대전 승리 중국 기념일)에 참여할 만큼 상호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경제보복은 본격화됐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 등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롯데마트를 비롯한 중국 사업 대부분을 접었고 현대차 역시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중국 내 사업 조정에 들어갔다.
매년 수백만명씩 한국을 찾는 중국인 여행객도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명동과 종로 등 주요 쇼핑거리는 수년간 고통에 허덕이고 있다. 교민들도 상당수 한국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이른바 한한령(한류제한령)도 이즈음부터 시작됐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발동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정부 눈치에 더 이상 한류 콘텐츠를 공식적으로 찾는 중국 업체는 없었다.
김치, 한복에 대한 중국 원조 주장도 불거졌다. 김치는 파오차이에서, 한복은 명나라 한푸에서 유래됐다는 중국 논리에 한국이 발끈했다. 2002년부터 공식 진행된 ‘동북공정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조선·부여·고구려 등 한국 고대사 국가를 중국의 지방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말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올림픽에선 소수민족으로 소개하며 한복이 등장했다. 중국은 조선족의 전통 옷이라고 반박했지만 이 같은 사례를 이미 경험한 한국 국민들은 분노했다. 편파 판정 논란도 있었다.
우려되는 것은 양국 국민 중 20~30세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에 출생한 디지털 환경 익숙 세대)의 갈등이 골이 깊다는 점이다. 반중·반한 감정의 최전선에 이들이 서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민간 영역에게 맡겨둘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양국 청년세대 교류 협력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양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역사·문화에 대한 공동 연구를 수행하거나 이러한 토대를 닦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필요해 보인다”면서 “양국 정부는 위기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민감정 악화 해소 정부 적극 나서야
그나마 한한령 해제를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되고 있다는 점은 새 정부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 한한령 이후 6년 만에 한국 영화 ‘오! 문희’가 지난해 중국 내에서 첫 개봉했다. 올해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또 오해영’, ‘인현왕후의 남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사임당, 빛의 일기’ 등 한국드라마 6편이 잇따라 방영됐거나 방영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면서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년)이다. 중국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시기를 활용한 한중 우호와 교류를 강조해왔다.
CJ는 이에 맞춰 영화·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중국 현지 직원을 확대하고 있다. CJ 관계자는 “한중수교 30주년이고 한한령 해제 분위기가 조성돼 사전에 준비를 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작품 리메이크를 위해 접촉하는 중국 업체도 많다”고 말했다.
다만 한한령 해제의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대응으론 빠르고 깊이 확산되는 반중·반한 감정을 상쇄하기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문 교수는 “한국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심각성에 동의하면 게임판호 해제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하고 중국도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은 지난해 12월 중국 톈진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한한령 철폐 요구에 대해 “적극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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