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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추가’ 공약한 윤석열에게 유화적 축전 보낸 시진핑의 셈법은? [글로벌 리포트]

시 주석, 초심 언급 "우호협력 심화"
‘전략적 동반자’ 놓칠 수 없는 핵심 국가
韓 중립적 입장 재확인하려는 의도
‘명암’ 공존한 韓·中 수교 30년
유대관계 공고… 교역규모 57배 증가
北 갈등·동북공정 등 곳곳 불협화음도
尹정부 ‘선택과 집중’ 외교
쿼드 가입 등 한미동맹 강화에 무게 추
'상호존중' 바탕 中 협력 확대 가능성 상존

‘사드 추가’ 공약한 윤석열에게 유화적 축전 보낸 시진핑의 셈법은? [글로벌 리포트]
역대 대통령 한중관계 명과암 그래픽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거 과정에서 '친미와 반중' 성향을 보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내면서 향후 한중관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은 중국이 극도로 경계해왔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혀왔다.

이처럼 윤 당선인의 대중 정책이 강경해질 것이란 전망속에서도 시 주석은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축언을 표하는 바",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라면서도, '초심'을 언급하면서 '우호협력 심화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축전 내용은 표면적으로만 해석하면 우선 갈등이나 마찰보다는 유화적인 태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그동안 대중 제재 수위를 올려왔던 미국을 겨냥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질 것"이라면서 직설적인 언행을 해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국이 아직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우려감이 적지 않다. 시 주석은 박근혜정부 시절 한중 정상회담 와중에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뜻의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언급했고 이후 사드 보복은 시작됐다.

전략적 동반자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갈등 국면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지리·경제적, 문화·군사적 측면에서 양국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핵심 국가로 꼽히는 만큼 한국의 중립적 입장을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다.

외교 소식통은 "(축전을 전달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윤 당선인에게 '좋게 노력할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은 바꿔 말하면, 한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여지는 남아 있다. 윤 당선인은 1992년 한중수교 때를 회상하면서 "한중관계가 더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 사실 수교도 국민의힘 전신 정당이 집권할 때 맺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측 모두 다른 한편으론 한중수교에서 우호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현재의 난제를 풀 수 있는 명확한 교과서로 꼽힌다. 한중수교 30년 동안 양국관계가 어떻게 변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는지 살펴보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도 들여다봤다.

■비약적 발전한 한중관계 30년

한중관계는 진보·보수 중 어느 한쪽이 집권했다고 일방적으로 발전했거나 퇴보하진 않았다. 외교는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냐 보다는 당시 정세에 맞춰 변해왔다. 진보·보수에서 긍정·부정적인 면이 공존했다는 의미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8월 24일 체결한 한중수교도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 후 오랫동안 친미국가를 적성국으로 간주하며 대립해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냉전시대 거의 30년 동안 공산국가들과 외교를 끊었다.

그러나 1970년대초 미중이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한반도주변 정세도 변화가 생기면서 한국은 1973년 6·23 선언을 통해 이념과 체제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중국은 197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최고 권력기구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함께 '양회'로 불림) 제11기 3차 회의에서 개혁실용주의를 채택하고 대외개방정책을 전개했다.

양국이 곧바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자는 내용의 수료를 맺은 것은 아니다. 1983년 중국민항기가 공중 피랍돼 춘천에 불시착하는 사건으로 한중간 최초 공식 대면한 뒤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때 상호 선수단을 파견했고 관광과 이산가족, 친척방문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 교류의 문을 먼저 열었다.

수교 이후에도 문화 측면부터 관계를 강화했다. 한중은 수교 2년 뒤인 1994년엔 문화 협정을 맺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당시 김 대통령과 장쩌민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양국 외교장관이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봤다.

초대 한국 주재 중국문화원장을 지낸 주잉제(65) 중국노인서화연구회 미술관 관장은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천 년간 끊겼던 문화교류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국제정세와 한반도 상황에 변화가 있으므로 문화교류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곳곳 불협화음, 갈등의 '골' 北

이후 한중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교역규모의 경우 1992년 63억8000만 달러(약 7조9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인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35배에 육박하는 2206억 2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다시 9년 뒤인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엔 3624억 달러(약 448조3000억원)로 늘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에서 싱 대사에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고, 중국의 3대 교역국이 우리"라고 말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외교관계도 유대를 공고히 했다. 수교 당시 '우호협력 관계'에서 1998년 '협력동반자 관계'(김대중),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노무현)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이명박) 등으로 빠르게 격상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은 존재했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열차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타야만 했고 이는 중국의 불만을 샀다. 중국 역시 북한과 관계에 신중히 접근하면서 한국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2000년(김대중)엔 이른바 마늘 분쟁(한국이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을 30%에서 315% 인상하고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보복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2년(김대중~노무현)부턴 동북공정(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한국 고대사 국가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중국이 주변 해역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주장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신경전도 벌였다.

북한 문제는 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만든 단골 쟁점이었다. 남북한과 모두 수교한 중국은 중요한 순간이 되면 대북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명박)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까지 넘어갔지만 중국이 '북한 편들기'로 일관해 결국 대북 제재를 무산시켰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 9명이 일제히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 결례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소집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북한 규탄 서명 채택을 중국이 반대했다.

■전승절 참석한 朴, 사드 '급랭'

2013년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의 전승절(2차 세계대전 승리 중국 기념일)에 참여할 만큼 상호 우호적이었다. 전승절에 국가 원수가 참여한 서방국가는 한국과 폴란드, 체코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롯데, 현대차 등은 경제보족에 중국 내 사업을 철수하거나 조정에 들어갔고 매년 수백만명씩 한국을 찾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발길을 끊었다. 교민은 상당수는 한국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이른바 한한령(한류제한령)도 이즈음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빠른 관계 회복에 들어갔다.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이해한다고 밝혔으며 한국은 사드 3불 정책(추가배치·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한미일 군사동맹화 불가)을 언급했다. 통화 스와프는 연장했고 양국의 최대 공통현안인 북핵은 해결을 위한 소통과 협력에 상호 공감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의 반중·반한 감정이 양국관계 악화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중국발 미세먼지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시 주석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 발언에 이어 김치, 한복 등 역사·문화에 대한 중국의 원조 주장에 한국이 들끓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한복이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소개됐다. 편파 판정 논란 끝에 중국 선수가 금·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정기·협력 확대 가능성 상존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중정책 변화는 공통된 평가다. 윤 당선인은 미국과 EU에만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4강 파견 관행에서 탈피해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이미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한중 관계를 '상호 존중'에 바탕을 뒀다. 그러면서 쿼드 가입, 사드 추가 배치, 완전한 비핵화 달성까지 국제적인 대북 제재 유지 등 반중국 혹은 한미동맹 강화로 기울어져 있다.

다만 후보 시절 공약과 실질적 대통령직 수행은 다른 점이 상당히 존재하는 만큼 협력 확대 가능성도 상존한다. 사드 이후 막아놨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중국 내 상영·방영 소식도 들려온다. 한 대기업은 한한령 해제를 대비해 중국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5월 말 예상)에 이어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도 아직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시 주석의 첫 해외 순방 국가로 한국을 지목해왔다.

추궈홍 전 주한중국대사는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한중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새로운 경제 성장 거점을 만들 방안, 중장기적인 인문 교류 비전을 (방한) 준비단계에서 소통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