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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인사권·업무보고까지 ‘곳곳 신경전’… 멀어지는 회동 [신구정부 갈등 증폭]

文 "다른 말 듣지 말라" 윤핵관 저격
尹측 유감 표명… 대치 장기전될듯
박범계 尹당선인 공약 반대 표시에
인수위 법무부 업무보고 거부 사태

신구 권력의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 문제에서 시작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인사권을 넘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까지 전선이 넓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양측 갈등의 핵심인 회동 문제가 이른 시일 내 정리되지 않는다면 새 정부 출범 때까지 강대강 대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文-尹 회동 여전히 안갯속

24일 문 대통령은 참모회의에서 대선이 끝난 지 2주가 지난 시점에도 윤 당선인과 회동이 성사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다른 이의 말을 듣지 말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의 핵심 관계자를 의미하는 이른바 '윤핵관'을 우회적으로 저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과의 회동을 위해 몇 차례 손을 내밀었다. 그때마다 특별한 의제 없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동이 좀처럼 성사되지 않으면서 문 대통령은 그 원인을 윤 당선인 측근 영향으로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윤핵관'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부터 인사권,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등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양측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하면서 문 대통령과의 회동이 단순 덕담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윤 당선인 측은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이 긴요한 때에 회동이 진행되는 만큼 관련 논의가 중요하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 입장에서 본인이 직접 발표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이 전 대통령 사면 등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면 굳이 회동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회동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인사권 행사도 평행선

전날 문 대통령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를 지명하면서 다시금 촉발된 인사권 문제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임기 끝까지 인사권은 대통령 몫으로 규정하면서, 윤 당선인도 대통령에 취임한다면 마지막까지 인사권을 행사하라고 밝혔다. 양측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는 감사원 감사위원 등에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새롭게 임명될 인사들이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이 아닌 윤 당선인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윤 당선인의 의사가 반영된 인사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다 윤 당선인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급적 인사를 동결하고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인사와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인사권 역시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감사원 감사위원에 대한 인사가 강행될 경우 신구 권력 충돌은 파국을 향해 치달을 것으로 예측된다.

■인수위, 법무부 업무보고 거부

이날 오전에는 인수위가 법무부 업무보고를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날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자 인수위가 맞불을 놓은 모양새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갈등에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인수위는 법무부를 향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다" 등 이례적으로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양측의 감정대립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박 장관은 인수위의 갑작스러운 퇴짜에 말을 아꼈다.

인수위는 업무보고 취소 발표 이후 "당선인 의중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윤 당선인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사법개혁의 핵심 공약으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내세워왔다. 특히 검찰총장 시절 겪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수사지휘권 갈등이 정계 진출의 계기가 된 만큼 박 장관의 반발을 묵과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편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통의동 프레스다방에서 기자들에게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검찰에) 독립적인 권한을 주는 게 더 (검찰의) 중립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며 "장관 수사지휘권은 별로 필요 없다"고 말했다.

syj@fnnews.com 서영준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