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주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 대금을 러시아 루블화로만 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루블화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천연가스·원유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려는 고육책이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큰 유럽국들을 겨냥, 자원무기화 카드를 빼든 셈이다.
이로 인한 충격파는 일단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전달됐다. 지난주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모두 들썩거렸다. 특히 달러에 대한 루블화의 가치가 한때 6% 정도 상승, 환율 방어에 나선 푸틴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드는 듯한 낌새였다.
루블은 '자르다'라는 뜻의 러시아어 '루비찌'에서 유래했다. 일정한 무게로 잘라낸 은괴 조각을 화폐로 사용했던 전통에서 따온 명칭이다. 달러에 버금갈 때도 있었던 루블의 가치는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초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 중 아직 벨라루스 정도가 화폐 이름으로 루블을 쓰고 있다.
루블화 결제 의무화는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처럼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수요를 줄이게 돼 루블화 가치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 20일 카타르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결국 러시아의 이번 결정은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에서 쫓겨난 터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당장엔 서방 금융시스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겠지만, 정작 달러화를 확보하지 못해 우크라이나전 이후 경제재건에 필요한 수입에 차질이 예상되면서다. 이는 명분 없는 침공으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 데 이어 장기적 경기침체를 부르는 자충수를 두는 꼴이 아닌가. 푸틴 대통령이 소비에트제국 부활이라는 헛된 미망에서 속히 벗어나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자신과 러시아 민생경제도 살리기를 바랄 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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