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되풀이
전담기구 설치 검토할 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밤 늦은 시간 통상 조직 이관 관련해 산업부를 겨냥한 메세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사진=뉴시스
정부 통상교섭권을 두고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충돌했다. 현재 산업부에 속한 통상업무를 다시 외교부로 이관할 것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부처 간 경쟁이 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29일 밤 늦은 시간 외교부는 산업부를 겨냥, "다른 나라 입장을 왜곡해 이를 활용하는 부처 행태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는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내는 소동도 벌어졌다.
통상 조직개편은 현재 대통령직인수위가 고심 중인 사안이다. 인수위는 전체적인 정부 조직개편 논의와 함께 이 문제를 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중 패권 다툼, 격해진 보호무역 등 엄혹한 글로벌 정세 속에서 통상조직 개편 필요성은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해 요소수 부족 사태, 배터리 원자재 공급난 등을 겪으며 정부의 통상외교 능력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현 통상교섭본부는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외무부에서 재편된 외교통상부 산하 장관급 부서로 출발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때 통상기능이 산업부로 넘어갔고, 책임자 직급은 차관보급으로 내려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상차관보를 차관급 통상교섭본부장으로 격상했으나 후보 시절 공약과는 달리 조직을 외교부로 옮기진 않았다.
외교부는 통상과 외교는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외교부가 통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구조로는 할 수 없는 업무가 너무 많아 팔과 다리가 묶인 상황에서 경주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반면 산업부는 통상과 산업이야말로 불가분의 관계라고 맞선다. 산업을 알아야 통상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주 개최한 '신정부 통상정책 심포지엄'에서도 전문가들은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경쟁국들처럼 우리도 산업통상형 조직을 운영할 것을 조언했다.
이번 기회에 통상교섭의 모델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1962년 미국 의회는 대통령이 무역협상에 대한 특별대표를 임명할 것을 촉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특별법에 의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신설된 조직이 바로 USTR이다. 기능은 계속 확대돼 지금은 통상교섭은 물론 대내외 투자 등을 총괄하는 막강한 기구가 됐다. USTR은 산업을 담당하는 상무부, 자원을 담당하는 에너지부와 기능이 분리된 독립조직이다.
현재 USTR은 200명 이상의 전문가가 오직 통상 관련 업무만 맡는다. 이 덕에 수십년 한우물을 판 전문 베테랑이 수두룩하다. 여러 해 특정국가와 벌이는 분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현 수장인 캐서린 타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료회의에 장관급 고정멤버로 참여한다. 타 부서와 협업이 안 될 수가 없는 구조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글로벌 통상전쟁은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자원무기화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통상 파고가 거세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상교섭권을 산업부가 갖느냐 외교부가 갖느냐를 두고 소모전을 벌이는 상황이 안타깝다. 이참에 새 정부가 한국형 USTR 설립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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