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 피해자와 법적다툼
정부는 금융사 제재·책임에 집중
만기 도래 채권 원리금·건물 등 찾아올 수 있는 돈도 안찾아
회수때 제재 낮춰주는 유인책 필요
그동안 부실 사모펀드 관련 자산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제재를 받는 즉시 판매사들과 금융당국이 '할 일을 다했다'는 소극적 태도가 만연해 있어서다. '조용히 넘어가자'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돈 많은 금융사가 피해자에게 원금을 배상하는 구조가 고착화됐고, 이 과정에서 유출된 국부는 잊히고 있는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업계에선 관련 주체들이 적극 회수에 나설 수 있는 유인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찾을 수 있는 돈도 안 찾아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1조6600억원), 옵티머스자산운용(5500억원),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1100억원) 등 대표적인 사모펀드 부실 및 환매중단 사태로 인한 피해금액만 합해도 2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 외에도 젠투파트너스펀드(1조3000억원), 알펜루트자산운용펀드(8800억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7950억원) 등 피해 규모도 크다.
이 가운데 피해액이 온전히 복구된 사례는 없다. 대개 자산회수 능력을 상실한 운용사는 업무정지 혹은 퇴출되고,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사와 피해자단체의 법적 다툼으로 비화되는 수순을 밟는다.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와 자신들도 '불완전한 상품'의 피해자라는 판매사들 입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건은 공회전한다.
문제는 찾을 수 있는 돈들이 버젓이 있는데도 아무도 이를 찾아오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의 원리금을 확보하거나 토지·건물 등 현물을 회수하면 못해도 10~20%는 찾아올 수 있다. 회수율이 50% 되는 펀드도 많다. 1조원이 부실 난 경우 1000억원에서 많게는 5000억원까지 찾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당국-판매사-피해자 "제재부터"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수는 금융사, 금융당국, 피해자 어느 쪽 요구에서도 비켜나 있다. 부실상품인 줄 모르고 '판매한' 잘못밖에 없다는 금융사들은 경영진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데 로비력을 집중한다. 제재일정을 끌거나 피해자에게 피해액 일부를 우선 물어주고 논란을 잠재우는 쪽을 택한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장기집권하며 생긴 '실세라인'들이 회장 구명작업에만 몰두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책임 잣대가 경영진을 향하는 순간 더 이상 '돈 문제'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잘못이 없다면서도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회수'보다 '제재'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사 군기잡기와 투자자의 분노를 잠재우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아서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논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와 분쟁조정위원회는 기관 업무나 개인의 책임에 대해선 날 선 공방을 벌이지만 피해금을 되돌려놓을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고 있는 데다 정권교체기에 굳이 회수 이슈를 꺼내려는 쪽은 없다"며 "증권사, 은행 등 판매사들 역시 '가교 운용사' 설립비용을 댄 것으로 일정부분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피해자 입장도 마찬가지다. 어느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든 원금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플리바게닝 도입 필요"
업계에서는 원활한 회수를 위해 강한 유인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추가 범죄사실을 털어놓을 경우 형량을 낮춰주는 '플리바게닝'을 금융업계에도 도입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로서는 밖에 유출된 자산을 되찾아올 시 제재 수준을 낮춰주는 제도가 유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잘만 관리하면 회복 가능성이 큰 '우량 부실채권(NPL)'들은 금융사 입장에서도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나설 유인은 작다. 금융 소비자에게 금전적 피해를 끼친 기업과 타협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데다 수장 교체 등 정치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서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최근 부실펀드 판매 관련 최고경영자(CEO) 최종 제재를 사실상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뤘다.
psy@fnnews.com 박소연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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