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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사이트] 10년간 형사보상금 5000억…檢 기소권 남용 비용

[파이낸셜뉴스] 지난 10년간 형사보상금이 5000억여원 규모로 지출돼 검찰 기소권 남용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공사에 55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인수 판단 과정에 일부 과오가 있었다면서도 형법상 배임에 해당할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2015년 재판에 넘겨진 그는 2020년 12월에서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5년여간 대대적인 수사 대상이 됐던 그는 지난해 4월 4300여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형사보상금은 형사 피의자·피고인으로 구금됐던 사람이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국가에 청구하는 보상금이다. 구금 기간이나 이 기간중 중 입었던 재산상 손실, 정신적 고통과 신체 손상을 비롯해 수사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 유무 등을 따져 책정된다.

형사보상금은 검찰의 기소권 오·남용으로 인해 지출되는 일종의 '비용'이지만, 매년 형사보상금 지급액은 편성된 예산을 초과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낮은 인권 의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을 마치 수사 성과로 바라보는 검찰 내부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2011 ~2019년 형사보상금 평균 인용률 98%
10일 대검찰청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1부터 지난해까지 지급된 형사보상금은 5046억원에 달한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형사보상금 평균 인용률은 98%에 육박한다.

1958년 제정돼 2011년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로 전부개정됐다. 형사보상금은 청구 원인이 발생한 해의 최저임금법에 따른 일급 최저임금액의 5배까지 받을 수 있다.

과적 차량에 대한 양벌규정을 담은 옛 도로법 86조 위헌 결정에 따라 일시적으로 형사보상금 지급액이 폭증한 2012~2015년을 제외해도 형사보상금 지급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360억원(7374건)이었던 형사보상금 지급액은 2018년 367억(5073건), 2019년 419억원(4380건), 지난해 444억원(3414건)으로 23.3%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형사보상금 지급액은 매년 편성된 예산을 웃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5년간 편성된 형사보상금 예산 대비 집행률은 120.4%다. 편성된 예산 대비 20% 초과 집행됐다는 의미다. 초과한 예산은 예비비에서 충당하거나 다른 예산을 이·전용했다.

■"형사보상금, 국가 잘못으로 인한 비용"
검찰의 기소권 오·남용 우려는 꽤 오래된 문제다.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정권 출범 초 사정 국면에서 수사 대상이 됐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억울하게 구금된 이들도 적지 않다. 수사 당시에는 이미 혐의가 전부 입증된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불명예 퇴진 등 각종 피해를 입지만, 정작 무죄 판결을 확정받아도 수천만원의 형사보상금이 보상의 전부다.

관련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당사자들은 법 위반 없이 살아오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공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며 "사실상 정치적인 수사, 결과가 정해진 수사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 과오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인 형사보상금을 줄이기 위해선 형사보상금 현실화와 별도로 인권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보상금은 국가가 장차 어떤 수익이 날 것이라 예상해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라, 전적으로 국가 잘못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이라며 "인신 구속으로 인해 당사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한 의식이 낮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구금 기간을 중심으로 형사보상금 액수가 결정되는 만큼, 피의자 구속을 수사 성과로 보는 검찰 내부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현직판사는 "기소가 성과가 되는 조직이다 보니 무죄가 나올 여지가 있다고 해도 우선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분위기가 일부 있는 것 같다"며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구속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검찰 내부에서 피의자를 적극적으로 구속하는 문화가 형성된 반면 형사보상금은 검찰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형사보상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결국 구속을 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 문제로, 당사자를 구속해야만 성공한 수사로 보는 검찰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