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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에너지 안보 없이 나라 못지킨다

[구본영 칼럼] 에너지 안보 없이 나라 못지킨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만행에 전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 지척에 있는 유럽국들의 좌절감이 커졌다.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수입금지를 빼곤 대러 경제제재 카드를 총동원했지만 '부차 대학살' 등을 막지 못하면서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지난주 뜻밖에 '고해성사'를 했다. 대러 유화정책의 실패를 시인한 것이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후회하면서다. 애초 우크라이나는 물론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할 수 있다며 이 사업에 반대했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가스 수출국이자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이다. 구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막대한 에너지 수입으로 원기를 회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 여세를 몰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니, 동유럽 국가들이 걱정했던 그대로다.

유럽연합(EU) 27개국이 최근 40일간 우크라이나 무기·장비 지원에 쓴 돈은 고작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다. 같은 기간 연료 구입비로 러시아에 바친 돈은 무려 350억유로(약 46조원)였다.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해온 관성 탓이다. 러시아산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에 코가 꿰인 독일이 가장 허둥댔다. 뒤늦게 미국과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를 하역하기 위한 터미널 건설을 서두르는 데서 보듯이.

에너지 패권다툼의 속성을 갖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독일을 '을'로 전락시킨 원죄는 엄밀히 말해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기민련)의 몫이다. 이공계 출신으로 4선에 성공한 그는 본래 친원전론자였다. 하지만 세번의 좌우 대연정 중 탈원전으로 돌아섰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이 탈원전의 대안으로 가스발전을 택하자 슈타인마이어 당시 외교장관을 앞세워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2 건설에 합의하면서다.

우리는 요즘 독일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에너지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 6·25 남침 전인 1948년 5월 14일 남한이 쓰던 전기의 70%를 공급하던 북한이 단전조치를 취했을 때다.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인 세계 최빈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1956년 38만달러를 들여 미국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온 숨은 동인이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정희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개발에 질주하는 동안 원전 강국의 초석을 놓았다. 물론 수력발전 등 재생에너지원 개발도 도외시하진 않았다. 이후 정부들도 에너지믹스란 큰 틀에선 이 기조를 따랐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료 혜택과 함께 산업화·정보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근 한국전력의 천문학적 적자 누적과 함께 자칫 '전기료 폭탄'이 터질 참이다. 우리가 독일보다 태양광·풍력의 입지조건이 훨씬 열악해 전력 생산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다. 독일 탈원전을 벤치마킹한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역설이다.


이는 역대 정부가 쌓은 에너지 안보의 금자탑이 문 정부 들어 금이 가고 있다는 뜻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중립위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역설적 단면도다. 탈원전으로 모자라는 전력을 중국·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방안까지 포함됐으니….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 안보에 관한 한 독일이 러시아의 호구가 된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이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