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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려야 할 때" 일본 원전 재가동으로 우향우 [글로벌 리포트]

탈탄소 시간표 맞춰야 하고
'러의 우크라 침공' 여파
초유의 고유가 사태 직면
"이대로 가면 겨울 못난다"
에너지수급 위기감 고조
진보성향 매체 설문에서도
'재가동 반대' 첫 50% 아래로
콘크리트 여론 균열 생겨
사실상 재가동은 결정 됐고
'전면 가동'까지 속도의 문제

"이제는 돌려야 할 때" 일본 원전 재가동으로 우향우 [글로벌 리포트]
"이제는 돌려야 할 때" 일본 원전 재가동으로 우향우 [글로벌 리포트]
후쿠시마 제1원전. 로이터 뉴스1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이제는 돌려야 하지 않겠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11년이 지난 일본에서는 최근 부쩍 원전 재가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1년 사고 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60기 중 10기로 전체 일본의 전력원 가운데 4~6% 수준이다.

사고 이전의 30%수준엔 못미쳐도, 20~22%정도로 원전 비중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상황'이 원전 재가동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탄소 시대 종료라는 시대적 흐름, 계속되는 고유가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석탄·천연가스 수급 불안, 여기에 최근 지진으로 화력발전소 몇 곳이 일시 수리에 들어가면서, 초유의 정전 위협까지 더해졌다.

원전 반대여론의 동태를 살피던 일본 정부도, 정치권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입 밖으로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며,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모습이다.

日여야, 원전 재가동 한 목소리

지난 11일, 원자력 발전소를 거느린 도쿄전력홀딩스의 주가가 오전부터 상승세를 타더니 급기야 전 거래일 대비 16%까지 치솟았다. 전주 금요일(8일)저녁 시간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심화된 전력 공급 문제에 대응하겠다며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총리가 원전 재가동론에 직접 불을 지피면서 전력기업들의 주가가 일시 요동친 것이다. 일회성 발언은 아니었다. 이어서 12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기시다 총리의 원전 재가동을 향한 확인사살이 이뤄졌다. "저렴하고 안정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을 포함한 모든 에너지원을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야권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미 일본 정치권에선 원전 재가동 문제는 여야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목소리나 다름없다. 과거 탈원전을 지론으로 밝혔던 고로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도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원전 재가동으로 입장을 전환했으며, 제1야당의 '40대 당수'인 이즈미 겐타 역시,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노후원전부터 후쿠시마형 원전까지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가동 중인 원전을 전부 멈춰세웠다. 민주당 정권 때였다. 일시 '탈원전 정책'이 표방되는가 싶었으나, 2013년 자민당 아베 신조 2기 내각 출범 2년 뒤부터, 새 안전 기준을 충족한 원전들에 대한 재가동이 허용됐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총 60기 가운데 24기에 대해 폐로 결정이 내려졌고, 17기가 강화된 심사 기준을 통과했으며, 이 가운데 10기가 지자체 동의 절차를 거쳐 가동(검사 기준 등으로 일시 중지 포함)되고 있다. 10기 가동까지 대략 10년이 걸린 셈이다.

아베 정권이라고 해서, 즉각적인 전면 가동으로 갈 순 없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감이 그 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는 전체 전력원 가운데 원전 비중을 20~22%(에너지 기본계획)로 높이겠다는 것이나, 수년째 6%에 머물고 있는 것은 원전에 대한 일본 국민의 거부감을 반영한다. 정치권조차 재가동은 부담스러운 용어였고, 사실상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최근, 원전을 둘러싼 일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운전이 시작된 지 40년이 넘은 '노후원전'(후쿠이현 미하마 원전 3호기, 1976년 운전 시작)이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재가동에 들어가는가 하면, 최근에는 인구 밀집지역에 위치한 도심 원전까지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의 동해쪽 시마네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에 위치한 시마네 원전 2호기는 이미 가동을 위한 9분 능선을 넘은 상태다.

해당 원전의 원자로는 사고 발생시 방사능 유출 위험이 더 크다고 지적되는 '비등수형(Boiling Water Reactor)'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체르노빌 원전도 이 모델이다. 게다가 원전 반경 30km이내 총 6개 기초자치단체에 총 45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사고시 인명 피해가 클 수 있다. 이런 우려에도, 지자체 동의 절차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자체 동의만 넘었다면, 얘기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3월 25일 시마네현과 맞붙은 광역지역인 돗토리현의 히라이 신지 지사가 사실상 동의 표명을 한 데 이어, 원전 인접 지역인 야스기시·이즈모시·운난시(시마네현), 사카이 미나토시·요나고시(돗토리현)등 5개 기초자치단체의 의원 과반수 이상이 원전 재가동에 찬성표를 던졌다. 원전 재가동에 따른 재정 확충의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돈과 직결된 문제다. "졸속 결정"이라며 반발하는 주민들도 있으나, 판은 이미 재가동으로 기울었다. 시마네 2호기가 가동하게 되면, 후쿠시마 사고 후 처음 가동하는 비등수형 원전이 된다.

■브레이크 없는 재가동 "속도 높이자"

원전 재가동을 지지는 시각에선 "어쩔 수 없다"는 일종의 상황논리가 크다. 일본에선 탈탄소와 관련 2개의 시간표가 설정돼 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 때인 지난해, 국제사회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3년 대비 46%(기존 26%)감축하겠다는 목표 제시와 함께 2050년 탈탄소화(카본 뉴트럴)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만으로는 현실적으로 탄소 중립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원전을 '베이스 로드(기저)전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러운 논리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 사태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천연가스, 석탄 등의 수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일본 석탄 수입량의 11%는 러시아산이다. 게다가 사할린 가스전도 제재 확대시, 손들고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 3월처럼 지진으로 화력발전 운행이라도 정지될 경우, 에너지 수급에 타격이 가해질 수 밖에 없다. 이때문에 일본 정부 내에서 "원전 밖에 없다. 이대로가면, 올 겨울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원전의 고비용 문제도 여전히 논란거리이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원전 재가동의 기준을 강화한 결과 일본의 전력 11사의 '안전 대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당초(2조7345억엔)보다 2배가 넘는 총 5조7790억엔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도통신은 "테러 등 대처 시설 설치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전력회사들이 여러 곳이 있어, 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탈원전 전도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등 전직 일본 총리 5명이 지구 온난화에 도움이 되는 투자처로 원전을 인정하려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망국의 정책'이라며 비판 서한을 보냈다가,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자민당 의원들로부터 십자포화 수준의 공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되레 고이즈미 전 총리 등 전직 총리들의 정치적 입지만 좁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가동 논의에 불은 붙었으나, 실제 재가동을 향한 진행 속도는 느린 편이다. 일본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심사 통과는 2년으로 책정돼 있으나, 대체로 반년 이상이 소요된다. 대략 1년에 1~2기 정도가 이 문턱을 넘고 있다. 이후에는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의 동의가 필요하고, 이후에 일본 정부의 최종 승인이 이뤄진다. 승인이 이뤄져도, 실제 재가동에 들어가려면 대략 1~2년 정도의 준비·정비 시간이 필요하다. 원전 1기를 돌리려면, 대략 짧아야 2~3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 "재가동에 속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최근 대두되는 양샹이다. 일본 야당인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이달 1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원자력 규제위원회의 심사 프로세스에 효율화, 합리화가 필요하다"며 서두를 것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원전 반대 여론층의 균열

일본의 원전 재가동은 이미 방향이 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속도', '시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키를 쥐고 있는 일본 사회의 여론도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 최대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응답은 53%로 반년 전(2021년 9월 44%) 조사 때보다 9%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재가동 반대'는 44%에서 38%로 감소했다.

일본의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 여론 조사에선 이런 변화가 좀 더 분명해 보인다.
지난 2월 조사에서 원전 재가동 반대 의견은 47%로 1년 전(53%)보다 6%p 감소했으며, 이 수치가 50%밑으로 내려간 것은 2013년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었다. 콘크리트와 같은 반대여론층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사회의 여론 과반이 이미 원전 재가동으로 기울어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