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테헤란로 사옥 찾는 회사들, 건물주 앞에서 비전 PT까지 한다 [테크기업 강남입주 열풍]

비대면 시장서 성장한 스타트업
인재·고객 접근 쉬운 강남행 러시
대형 오피스, 임대인 우위로 역전
임차인이 웃돈 붙여 임대료 제시
선택 받으려 면접 보듯 설명회도

테헤란로 사옥 찾는 회사들, 건물주 앞에서 비전 PT까지 한다 [테크기업 강남입주 열풍]
대형 오피스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모습. 테헤란로 주변 오피스들은 우수한 입지와 직원들의 선호 등으로 입주를 희망하는 테크기업들이 몰리고 있다. 사진=김희수 기자
#. 인공지능(AI) 분야 유망 스타트업인 A사는 최근 서울 강남권에 임대사옥을 구하려다 낭패를 겪었다. 역삼역 인근의 대형 오피스에 들어가려면 아파트 분양권처럼 임대료 프리미엄을 내야 하고, 사업비전까지 설명해야 한다는 걸 알고 포기해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분야를 중심으로 신생 테크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서울 강남권 오피스 입주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강남권을 선호하는 인재 유치를 위한 입주수요는 넘쳐나는데 오피스는 부족하다 보니 임대료에 웃돈이 붙거나 면접까지 봐야 하는 신풍속도가 등장했다.

■임대인 우위 시장에 '웃돈은 기본'

19일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강남권 프라임 오피스(대형 업무빌딩) 시장은 극심한 임대인 우위 구도가 형성돼 있다. 오피스 중개업계 관계자는 "요즘 강남중심업무지구(GBD) 대형 오피스에 입주하려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임대료를 임차기업이 먼저 제시하는 게 기본"이라며 "2019년까지 나타났던 임차인 우위 시장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강남 대형 오피스의 3.3㎡당 월 임대료는 11만원 선으로 1년 새 10%가량 올랐다"고 전했다.

임대료를 높이 제시한다고 입주가 무조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피스 중개업계 관계자는 "건물주가 입주 희망기업에 일종의 면접처럼 미래비전 등 프레젠테이션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등 성장세가 가파른 회사가 입주했던 오피스는 '좋은 기가 흐른다'며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강남구 테헤란로의 포스코타워 내 전용면적 1300㎡(약 400평) 규모의 오피스가 나오자 20개가 넘는 임차의향서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경쟁 끝에 종합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가 최종 선택을 받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16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사세를 키우고 있다. 또 지난해 준공한 신축빌딩인 역삼동 센터필드의 한 오피스에도 20곳의 입주희망기업이 경쟁을 벌였다.

입주수요가 많다보니 임차 희망 기업이 무턱대고 임차확약서를 보내는 추세다. 강남권 오피스 중개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임차인이 임차의향서를 제출한 뒤 임대인과 협의가 진행되면 임차확약서를 주고받았다"며 "최근에는 임차의향서를 보낸 뒤 곧바로 일방적으로 확약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건물주에게 입주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용도"라고 설명했다.

■테크기업들, 우수인재 확보에 필수

최근 GBD권의 극심한 오피스 입주 경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시장에서 급성장한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사무실 구축서비스 업체인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고객사 10곳 중 7곳은 강남권역에서 사옥을 찾고 있다"며 "그중 상당수가 정보기술(IT) 기반의 스타트업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강남에 꼬마빌딩 공실은 꽤 있지만, 1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형 평수의 사무실은 공실을 찾기 어렵다"며 "임대 매물이 없어 고객사에 성수나 용산을 대체지로 추천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테크기업들이 비싼 비용에도 GBD를 선호하는 건 구인난 때문이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의 조사 결과 젊은 직장인들은 회사 입지를 가장 중요한 업무환경으로 꼽았다. 테크기업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한정된 우수인력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강남과 같은 핵심지에 신사옥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테크기업 관계자는 "경기 북부인 일산 등지에서는 경기 남부권 출퇴근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며 "최근 최고기술책임자(CTO)의 핵심 역량으로 개발자 섭외력이 꼽히는 만큼 인재 유치를 위해 강남사옥 선호 경향이 세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강남권 오피스 공급 부족은 풍선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오피스 이전수요가 많다"며 "모두가 원하는 핵심지의 프라임 오피스는 단기간에 공급이 늘기 어렵기 때문에 강남의 오피스 활황이 성수 등 주변으로 번지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eath@fnnews.com 김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