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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350만명 전수검사에 격리 '공포', 사재기 나선 中주민

- 신선제품 대형마트 진열대 곳곳 텅 비어, 계산대엔 수미터씩 차례 대기
- 베이징시 당국 "안심해도 된다"는 발표 믿지 못하는 분위기
- 전수조사 결과 나오면 아파트 등에서 격리 현실화 가능성 있어

[르포]350만명 전수검사에 격리 '공포', 사재기 나선 中주민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한 신선제품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계산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베이징=정지우 특파원】25일 오전 9시(현지시간) 중국의 수도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한 신선제품 대형마트.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이지만 마트 안은 야채와 육류 등을 구입하려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당근, 파, 양파, 감자, 고구마, 마늘, 계란, 육류 등의 진열된 선반은 이미 동이 났고 이따금씩 매장 측이 다시 채워 넣어도 소비자들은 곧바로 쇼핑 카트에 담아 갔다.

또 8~9곳에 마련된 계산대마다 수 미터씩 길이 줄게 늘어서 있었다. 일부 주민은 가족들과 전화를 하며 어떤 야채가 없다거나 다른 마트로 가겠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베이징시 방역 당국이 “감염자군이 다양하고 이들의 활동 범위가 넓다”면서 감염자가 가장 많이 나온 차오양구 주민 350만명을 대상으로 25일부터 1주일 동안 3차례 코로나19 전수검사 하기로 전날 밤 발표한 영향이 컸다.

쇼핑 카트 위·아래 바구니에 물품을 가득 구입한 리우씨(30대·여)는 “상하이 상황을 봤지 않느냐”라며 “언제 격리될지 몰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시 당국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차오양구 시장의 생필품 공급은 충분하니 안심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요 대형 마트 물량은 충분하며 일별 판매량의 1.5배에 달하는 재고를 유지키로 했다고 소개했다. 생활필수품 정부비축 계획도 세웠다고 부연했다.

양베이베이 차오양구 부구청장은 “물자 공급과 비축은 충분하다”며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물가를 올려 공포심을 조장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신선제품 대형 마트 모습은 베이징시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믿지 못하는 주민 반응을 그대로 반영했다. 경제수도 상하이가 지난달 28일부터 순환·전면 봉쇄에 들어가 전에도 상하이시 방역 당국은 비슷한 내용을 중국 관영 매체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었던 선례도 있다.

주민 한모씨는(40대) 베이징시 당국의 발표를 언급하자 “‘지방 정부에서 사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충분하다’고 하면 그것은 지금이 사야할 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펑파이 등 중국 매체가 전날 밤부터 까르푸를 비롯한 주요 마트의 관계자를 연속 인터뷰하며 “베이징 시내 야채 재고품이 평소보다 2~3배 이상 늘었고 메이퇀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주문할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을 지우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만약 25일 밤이나 26일 새벽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1차 전수조사 결과 자신의 거주지 주변에서 감염자가 확인될 경우 격리는 현실화될 수 있다. 베이징시 당국 발언처럼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면 봉쇄 지역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르포]350만명 전수검사에 격리 '공포', 사재기 나선 中주민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한 신선야채 대형마트 내 진열대가 비어 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차오양구에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이 지역 내 한인 사회도 비상이 걸렸다.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은 차오양구에 속해 있다.

주요 한국 공관은 이날 예정됐던 각종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고 간담회 역시 다음 주로 미뤘다. 교민들은 각종 커뮤니티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과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중국본부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재외동포재단이 파악한 베이징 교민의 수는 유학생 1만1000명을 포함해 4만여명이다. 다만 중국의 코로나19 국경 봉쇄 이후 귀국한 뒤 중국으로 돌아온 유학생 수는 1200여명에 불과하다. 또 2020년 이후 베이징의 수차례 봉쇄로 타격을 입은 교민 중 상당수도 인천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따라서 현재 남은 교민은 최대 2만~2만5000여명 수준일 것으로 대사관은 파악하고 있다.

기업인과 주재원들도 베이징 보건 당국 발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이징에는 2020년 기준 코트라에 등록된 한국 기업만 380여곳에 달한다. 대부분 중국 사업을 위한 본사를 베이징에 두고 있다. 삼성을 비롯해 LG·SK·현대·포스코·두산·CJ 등 대기업과 신한·하나·우리·국민·기업·농협 등 금융권, 공공기관, 공기업들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국 곳곳에서 활동한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까지 포함할 경우 한국 기업의 수는 대폭 늘어난다. 다만 왕징 거리의 풍경은 대형마트와 달리, 아직까진 비교적 평온한 모습이다. 출퇴근 시민은 평소처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보행했고 곳곳에서 마스크를 내린 채 담배를 피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