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내 텅 빈 강의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솔직히 고등학교 동창 중에 저 밖에 안 남았어요."
충북 제천에서 거주 중인 한모씨(32)는 동네에 또래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지방국립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다. 한씨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서울로 떠났고 나만 남았다"며 "그나마 젊은 사람들은 공무원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도태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청년층들은 매해 서울과 수도권으로 정주지를 옮기고 있다. 문제는 읍·면 단위가 아닌 지방 거점 도시 조차 청년들의 탈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과 서울에 몰려있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직장 없어"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인구는 5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2013~2016년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나 공공기관 이전 작업이 90% 이상 마무리된 2017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청년층의 수도권, 서울 이동은 매년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인구는 1만88명,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한 청년은 5514명이다. 그런데 2020년에는 4배 이상 늘어 지방→수도권 4만3761명, 지방→서울 2만2345명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방대 졸업생들은 해당 지역에서 터전을 잡지 않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지방 대학 졸업생(취업자) 중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한 비율은 39.5% 수준이다.
청년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은 '양질의 일자리'와 맞물려 있다. 2019년 기준 자산총액 합계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 회사 2278개 중 서울에 위치한 곳은 1179개(51.8%)다. 경기 418개(18.3%), 인천 64개(2.8%)까지 포함할 경우 수도권 소재지는 1661개(72.9%)에 이른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위 1% 근로소득자 74.5%(14만5322명)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직장을 다니고 있다.
지난해 패션업을 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설모씨(27)는 "국립대를 나와 고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었다"며 "대구에 패션업 종사자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원단을 사러 서울에 가야 하는 일이 잦다"고 토로했다.
■지방 도시에도 문제 심각
지역 소멸은 단순 읍·면 단위에만 해당된 일이 아니다. 수도권 외 모든 지역에 해당되는 현상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비교적 양질의 일자리가 형성된 부산·울산·경남지역조차 청년층 3만635명이 수도권으로 떠났다. 대구·경북지역 역시 1만9898명이 수도권으로 향했다.
전문가들은 민간 영역에서 일자리 창출 부재가 지방 소멸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백원영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인력의 지역 간 이동은 산업구조와 일자리의 질, 임금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산업과 연계하는 지역 고용 정책을 수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민간 일자리 추이를 보면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됐다"며 "공공부문에서의 지방 일자리 외에는 지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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