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사용을 천명한 김정은, 별다른 관심이 없는 대한민국
'핵보유 기정사실화'에서→ '핵사용 기정사실화'로 전환
위기의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안보정책이 나올 수 없다
국민의 안보인식 제고, 군인의 대적관 확립 서둘러야...
북한 SLBM·ICBM·7차핵실험 등 추가도발 가능성 높아
[파이낸셜뉴스]
지난 26일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지난 25일 북한 김정은이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핵 무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공언'했다고 북한 선전매체들이 26일 보도했다.
매체는 이날 김정은이 열병식 행사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은 또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면서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주장했다.
지난 20~21일 남북 정상 간 친서를 주고 받은 '친서정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열린 이번 열병식 무력시위는 '화전양면전술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우리에게 엄중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됐으므로 이에 대응할 한국형 3축체계를 조속히 완성해나갈 것, 군사적 초격차 기술과 무기체계 개발을 병행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이날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없었고, 문재인 현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열리지 않았다. 국방부 등 정부는 공식 입장 없이 여느 때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1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북한이 다양한 핵무기 수단을 총동원해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행태만으로도 심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본격 천명은 그 위협의 수위가 절정에 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 센터장은 "한국에 절체절명의 안보위기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와 함께 "지난 5년간 평화담론에 갇혀 안보의식이 잠식된 결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단계별로 '△핵 프로그램 존재 부인→ △핵무장 완성→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 △핵무기 억제력 강조→ △유사시 사용가능한 핵무기' 전략으로 진화·고도화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북한의 ‘핵사용’ 천명은 이러한 단계의 마지막 수순이고 핵무기 위협의 끝판왕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날도 대한민국은 별 반향 없는 일상을 보낸듯 북한의 핵을 포함한 도발 위협을 나 몰라하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ICBM 발사로 모라토리엄(핵실험·ICBM 시험발사 유예)을 파기하고 레드라인을 넘어 강대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미국은 최근 4년 5개월 만에 동해 공해상에 링컨항모를 진입시키는 등 전략무기 전개로 북한에 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는 5월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도 예정돼 있는 등 한·미동맹도 복원·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반 센터장은 "우리 스스로 위기의식이 없으면 제대로 된 안보정책이 나올 수 없다"며 "국민의 안보인식 제고와 군인의 대적관 확립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라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자에서 90년 전 항일 유격대의 활동을 조명하며 지난.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열병식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열병식에 다시 등장한 화성-17호를 “주체조선의 절대적 힘”이라고 강조했다.
괴물 ICBM으로 알려진 화성-17호는 지난 3월 말 시험 발사에 성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한·미 당국은 화성-15호 개량형이었던 것으로 분석해 이번 열병식에 화성-17호의 등장은 북한이 확실한 전력으로 가동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번 열병식엔 기존 SLBM보다 3m가량 길어진 ‘북극성-5형ㅅ’의 개량형이 등장하긴 했지만 열병식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이렇다할 새로운 전략무기 등장은 없었다. 2만여명의 병력과 대규모 군중, 250여대의 장비를 동원한 외형과는 달리 속내는 초라한 열병식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북한이 지난 16일 태양절 다음날 발사한 신형전술유도무기시험발사는 고도 25km로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필요 없고, 이렇게 낮은 고도의 발사체는 사전에 발사 동향 탐지와 요격이 매우 어렵워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의 전술핵이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초대형 방사포에 장착해 발사할 경우 한국 전역이 핵 공격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분석이다. 전술핵을 장착한 미사일이 마하 4~5의 속도로 비행한다면 1분 정도면 서울 상공에 도달할 수 있다.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이 발사체를 1분 안에 탐지·결정·요격을 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며 북한이 2발 또는 4발의 전술핵 미사일을 연속 발사할 경우 한 발만 요격에 실패해도 결과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한 가공할 장·단거리 탄도 미사일 능력을 확보했음을 선언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 2006년부터 6차례의 핵실험과 150회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올해 들어서만 한차례의 실패를 포함, 총 13차례에 걸쳐 각종 미사일 발사와 방사포 사격 등 무력 도발을 벌여왔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인민혁명군 창건일 열병식 이후 신 정부 출범을 전후해 충격 효과를 높일 수 있는 SLBM과 ICBM,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등을 동원한 동시다발적 도발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내에서 7차 전술핵실험과 같은 무력 시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 입구 주변 위성 사진 분석. 이전에 없었던 새 구조물이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사진=ONN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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