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보관하던 국제분쟁 자금
송금 막혔던 6년간 세차례 횡령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은행 직원이 빼돌린 500여억원의 자금은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 매각 과정에서 이란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직원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절차가 삐걱이던 수년 동안 이 돈을 관리하며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횡령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지난 2019년 패소 후에도 미국 금융제재로 인해 이란으로 송금이 불가했던 우리은행이 한미 관계 개선으로 대이란 송금이 가능해지면서 덜미를 잡혔다.
28일 금융권, 경찰, 우리은행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은행은 최근 기업개선부에 근무하는 직원 A씨가 회삿돈 500억원 이상을 횡령한 사실을 인지하고 전날 저녁 경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A씨는 잠적했다가 전날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찾아 자수해 긴급 체포됐다.
A씨가 횡령 혐의를 받는 돈은 우리은행이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결정한 지난 2010년, 매각 주체인 다야니 가문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이다. A씨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세 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 2010~2011년 우리은행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주관하며 매수자인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으로부터 계약금 578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매매대금 관련 이견으로 결국 계약이 파기되면서 매각을 주관한 우리은행이 이 계약금을 별도 계좌로 관리해 왔다.
엔텍합을 소유한 이란 다야니 가문은 지난 2015년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계약금과 이자를 합해 756억원을 돌려달라는 투자자·국가간소송(ISD)을 제기했고 2019년 우리 정부가 패소했다. 즉 우리은행이 이 돈을 돌려줘야 하게 됐던 상황이다.
A씨의 행위가 이때 즉각 드러나지 않은 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 때문이었다. 우리은행이 ISD로부터 패소했지만 미국의 금융제재로 당장 이란에 송금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올 초 외교부가 미국으로부터 특별허가서를 발급받으면서 드러났다. 한국이 이란 다야니 가문에 지급해야 할 국제투자분쟁(ISDS) 배상금을 송금할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우리은행이 이 계좌를 열어본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미 5년 전 해당 계좌에 있던 모든 돈을 빼돌린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우리은행에서 줄곧 기업구조개선 관련 업무를 담당해 왔으며 최근까지도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이란으로 배상금을 송금해야 하는 '디데이'를 하루 앞두고 자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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