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5월 9일 승전의 날에 맞추어 '승리'와 종전을 선언하리라는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간의 실패에 격노한 푸틴이 '특수작전'이 아니라 '전면전'을 선포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예고했다. 러시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예측과 전망은 더욱 어렵다.
몰도바가 다음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떨고 있고,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자 카자흐스탄이 긴장하고 있다.
국제질서와 규칙을 위반하고 마음대로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푸틴의 수치심을 이제라도 잘 다독이고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세계는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푸틴을 규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정세는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우선, 탈원전 정책으로 러시아에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면서 전쟁기반을 만들어 주었다는 비난을 받았던 독일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노르트스트림 2를 사용도 못해보고 포기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전쟁 중 석탄과 석유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하루 8억 유로씩 유럽에 수출을 계속 해왔다. 러시아는 국민들이 경제제재로 돈을 쓰지는 못하는데 가스와 원유 대금은 축적되다 보니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유럽이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전쟁 동력을 제공하는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경제제재가 효력이 없자, 이제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무기를 지원하고 병력을 투입함으로써 러시아군을 소모시키는 전술로 전환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구소련이 베트남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미국을 탈진시켰던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연대하는 것을 억제하고, 러시아 국력이 약화되는 것을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이 세계평화를 주도하고 관리하는데 있어 전폭적인 지지가 실리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동국가만 보더라도 원유 증산을 거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그리고 러시아와 방위산업 협력에 얽혀있는 이스라엘은 러시아 손을 들어주고 있다. 대폭 할인된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인도 역시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주도 안보협의체) 회원국이지만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터키의 행보가 조금 독특하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산 S-400 대공 미사일 수입 때문에 미국과 사이가 갈라졌던 터키는 러시아 경제제재에서는 발을 빼면서도 군사적으로는 공격용 드론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중립 이유는 다분히 경제적인 것이었다.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드론의 엔진을 우크라이나에서 공급받았고, 2020년 우크라이나와 군사협정까지 맺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보면, 터키는 대량 밀을 러시아에서 수입해서 가공 후 유럽에 수출한다. 러시아 관광객도 전제 40%에 이른다. 천연가스 50%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200억 달러 규모 원자력 사업도 러시아와 얽혀있다. 이렇게 애매한 상황이지만 몽트뢰 협약에 따른 보스포로스 해협 통제권으로 러시아 군함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러시아에 제재에 동참하면서 중립에서 친미성향으로 기울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각국이 외교전을 벌이며 단순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한국은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하는가?
제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이제 국격에 맞는 다자주의 '중간국' 외교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인간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수호 그리고 세계평화를 주도하는 리더십 발휘를 위한 가치 공유와 독트린 마련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동맹을 지키고, 비핵화를 위한 북미관계 중재, EU와 OTS(투르크 국가연합), 인도와의 관계 강화 등에 비중을 늘릴 필요도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그 범위를 확대할 예정인 6월 개최되는 나토 정상회의에는 비나토 동맹국인 한국도 초청받은 상황이다. 5월에는 바이든 대통령 방한도 예정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외교전략과 독트린 마련으로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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