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 재택근무와 식당 내 취식 금지 등으로 고충 갈수록 커져
- 한 기관 직원은 부임 후 격리되면서 비자 만기 도래...짐 풀기도 전에 귀국해야할 상황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핵산(PCR) 검사소 앞에서 지난 11일 방역 요원과 배달원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정지우 특파원
【베이징=정지우 특파원】다른 지역 출장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확산세에 일찌감치 화상으로 회의 패턴을 바꾸며 적응해왔다. 하지만 베이징 내의 재택근무는 또 다른 문제다. 의사소통은 가능해도 아직 대면 만남을 대체하기는 부족하다. 베이징 현지 대기업 관계자는 12일 현재 생활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정은 절박하다.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에 체결한 계약 물량을 처리하는 것 밖에 없다. 요식업은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배달로 겨우 버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결국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 집단감염이 발생 20일째 접어들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주재원, 교민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피로감도 쌓이고 있다.
베이징은 지난달 22일 차오양구 한 중학교에서 6명이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하루 만에 22명으로 늘어난 뒤 지금까지 30~70명대의 신규 감염자 수를 이어오고 있다.
시 당국이 17개 구(경제개발구 포함) 중에서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2개 구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핵산(PCR) 검사 6차례에 걸쳐서 진행했지만 감염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감염자가 가장 많이 나온 차오양구의 경우 전날까지만 11차례 핵산검사가 이뤄졌다. 한 교민은 “핵산검사가 일상화됐다”고 말했다.
차오양구는 한국인 밀집지역이다.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등 기업 본사와 주중 대사관을 비롯한 각 기관, 자영업자들이 주로 이곳을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나간다. 거주지 역시 차오양구에 주로 잡고 있다. 베이징에 주소를 두고 있는 한국 기업 수는 380여곳(2020년 기준)이고 교민은 최대 2만5000여명 수준이다.
시 당국의 방역도 이런 차오양구에 집중되고 있다. 노동절 연휴 첫 출근일인 5일부터 차오양구는 전 주민에게 재택 근무할 것을 권고했다. 명목은 권고이지만 만약 감염이 발생할 경우 회사나 건물주가 책임을 져야가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 성격이 짙다.
한 공기업 대표는 “입주한 건물에서 출근을 하려면 한국 본사의 직인이 찍힌 사유서 등 여러 가지 서류를 제출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면서 “이마저도 1명만 가능하다고 하니, 나오지 말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베이징은 지난해 말 중국 본토에서 재확산된 즈음부터 진출입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 이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이후로 출장을 미뤘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베이징도 잠식당하는 상황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출장은 양쪽(베이징과 현장) 모두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현재는 불가능”이라며 “베이징 내에서조차 중국 측과는 화상으로 회의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은행들도 차오양구 영업점 문을 대부분 닫았다. 그나마 문을 연 교민 집단거주단지 인근 1~2곳도 창구는 1개만 운영한다. 은행 관계자는 “대기 줄이 길다”고 밝혔다.
대기업보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은 한숨 소리가 더 크다. 재중국 한국중소기업협회 관계자는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표는 중국 직원의 이탈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주말에 일부러 회사 차량 운전자를 불러 장거리 운전을 시키며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민들 생계 수단인 요식업의 경우 12일째 실내 취식이 금지되면서 피해를 감수하고 ‘할인’을 얹은 배달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한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부임한 한 기관 직원은 격리기간 중에 비자 만기가 도래하면서 짐을 풀어보기도 전에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관은 중국 정부에 비정부기구(NGO)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우려는 이런 상황이 언제 개선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제로코로나 유지 방침을 거듭 천명하고 있으며 베이징시는 봉쇄식 관리를 하는 건물을 895개로 확대했다. 또 시내버스 300여개 노선의 운행은 중단, 지하철역도 70개를 폐쇄시켰다.
주중한국상회 관계자는 “기업들에게 고충을 물어보면 상하이와 같은 상황을 대비해 통행증 발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상하이 경우 확산을 우려로 통행증 발급을 꺼리면서 생필품조차 공급이 막혔었다.
주중 대사관은 전면 봉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대사관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으며 베이징 한인회와 만약의 사태를 준비하고 있다.
장하성 주중 대사는 특파원들과 만나 “기업 활동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사관 차량은 어렵더라도 기업들은 통행증을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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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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